거듭난 신자의 표지 - 경외함(The Fear of God, 벧전 1:17; 히 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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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하나님을 경외함

성경에서 ‘경외함’이라고 할 때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존중하고 귀히여기는 마음으로 그 앞에서 두려워 떠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위엄과 사랑에 두려워 떠는 것입니다(시편, Ps 119:61; 잠언, Prov 28:14; 예레미야, Jer 33:9).

시편 119:61 (NKRV)

61 악인들이 불의하게 나를 핍박할지라도 나는 주의 법에 떠나이다(사역).

잠언 28:14 (NKRV)

14 항상 경외하는 자는 복되거니와 마음을 완악하게 하는 자는 재앙에 빠지리라

예레미아 33:9 (NKRV)

9 이 성읍이 세계 열방 앞에서 나의 기쁜 이름이 될 것이며 찬송과 영광이 될 것이요 그들은 내가 이 백성에게 베푼 모든 복을 들을 것이요 내가 이 성읍에 베푼 모든 복과 모든 평안으로 말미암아 두려워하며 떨리라

피조물로서, 그것도 타락하고 부패해서 우리 스스로는 하는 것마다 죄로 오염된 피조물로서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은 당연하고 마땅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해서 다르지 않습니다. 이 두려움은 죄로 인한 두려움이기 이전에 창조주 하나님에 대해 피조물이 갖는 존재적인 두려움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하늘의 별도 깨끗하지 못하고 하늘의 천사도 눈을 가리웁니다. (욥, Job 25:5-6; 이사야, Is 8:13).


욥기, Job 25:4–5 NKRV

4그런즉 하나님 앞에서 사람이 어찌 의롭다 하며 여자에게서 난 자가 어찌 깨끗하다 하랴 5 보라 그의 눈에는 달이라도 빛을 발하지 못하고 별도 빛나지 못하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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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Isaiah 8:13 NKRV

13 만군의 여호와 그를 너희가 거룩하다 하고 그를 너희가 두려워하며 무서워할 자로 삼으라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복음을 지속적으로 왜곡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빙자해 하나님의 은혜를 호색거리로 바꾸는 자들은 조심해야 합니다. 죄인에게 거룩하신 하나님은 소멸하는 불이시기 때문입니다(히브리서, Heb 12:28-29).

히브리서, Heb 12:28–29 (NKRV)

28 그러므로 우리가 흔들리지 않는 나라를 받았은즉 은혜를 받자 이로 말미암아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섬길지니 또는 감사하자 29 우리 하나님은 소멸하는 불이심이라

2. 경외함에 대해 만연한 오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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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우리 주변에는 구약시대에는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했지만 신약시대에는 더이상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는 것처럼 믿고 살아가는 교인들이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이런 치명적인 오해와 성경에 대한 피상적인 이해에 따른 하나님에 대한 잘못된 세대주의적인 구분은 오늘날 교회에 만연해 있고, 이로 인해 개인과 가정, 교회와 사회에 만연한 폐해는 우리의 상상을 초월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함’에 대한 이런 생각이 얼마나 비성경적인지는 누구라도 성경을 조금만 신경써서 읽으면 금방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신약과 구약 시대에 따라 하나님이 달라진 것처럼 여기는 것이 이런 생각의 가장 치명적인 오류가운데 하나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그럴까요? 신약성경은 정작 이 부분에 대해 뭐라고 말하고 있는지 확인해 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성령께서 칭찬하신 사도행전 17장의 베뢰아 사람들처럼 성경을 펴서 과연 그런지 살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이 시간에는 신약성경의 몇 곳을 예로 들어서 하나님에 대한 이런 이해가 얼마나 반 성격적이고 반 복음적인, 우리가 속히 버려야 할 생각인지를 보겠습니다.

3. 거듭난 신자들의 공동체인 교회의 공통된 표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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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은 승천하신 그리스도께서 성령을 보내사 하나님나라의 복음을 전파하시고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그리스도를 모퉁이돌로 하는 하나님이 거하시는 전으로서의 교회를 세워가시는 것을 기록한 책입니다. 신약시대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들의 표본과 모범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사도와 선지자들의 터 위에 그리스도께서 세워가시는 자신의 몸된 교회의 공통되고도 중심적인 표지들을 볼 수 있습니다: 회심자들; 구원에 대한 분명한 이해와 확신; 하나님에 대한 경외함.

a. 회심자들:

회심의 경험과 방식은 회심자들마다 다르지만 그 결과는 한 사람인 것처럼 동일하게 드러납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회심자’들은 하나도 예외 없이 그리스도를 주로 모시고 그의 계시된 말씀을 일상에서의 최종적 권위, 절대권위로 받고 삽니다.

b. 구원에 대한 분명한 이해와 확신:

당연히 이런 이해와 확신은 교육되고 학습된 것을 가리키지 않습니다. 만약 이런 이해와 확신이 교육되고 학습될 수 있는 것이라면 소위 말해서 학식이 많은 것과 구원을 알고 누리는 것이 비례해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나 경험적으로 잘 알고 있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은 이 구원을 통해 세상의 미련한 것을 들어 세상의 지혜로운 것을 부끄럽게 하셨습니다. 지금도 그것은 다르지 않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조나단 에드워즈가 말하는 것처럼 이 지식은 다름 아닌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초자연적인 빛의 비추임을 받은 영혼이 새롭게 되는 것으로부터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할례자나 무할례자가 아닌 마음에 할례를 받는 것이 중요한 것처럼, 식자나 무식자가 아닌 영혼이 이 빛에 비추임을 받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다름아닌 성령의 능력으로 역사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입니다.

c. 하나님에 대한 경외함:

이런 역사가 영혼에 일어난 결과와 증거입니다. 그리스도안에서 하나님의 새언약에 속한 자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드러나는 핵심적인 표지로서의 ‘하나님에 대한 경외함’입니다. 이는 신약이나 구약이나 다르지 않습니다. 창세기로부터 시작하여 요한계시록까지 ‘하나님을 경외함’은 구속받은 하나님의 백성된 표지입니다. 복음과 성령으로 거듭난 영혼의 표지로서 예외가 없습니다(예레미야, Jer 32:40),

예레미야, Jer 32:40 (NKRV)

40 내가 그들에게 복을 주기 위하여 그들을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는 영원한 언약을 그들에게 세우고 나를 경외함을 그들의 마음에 두어 나를 떠나지 않게 하고

4. 하나님을 경외함, 신약교회의 중심적인 특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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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과 서신서들을 보면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고 스스로를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믿고 영원한 소망가운데 살아가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성품과 삶에서 ‘하나님에 대한 경외함’은 중심적이고 핵심적인 표지임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의 복음이 환영받고 하나님의 말씀이 흥왕하고 주의 영이 역사하는 곳마다 ‘하나님에 대한 경외함’이 그리스도의 구속을 노래하는 찬가의 후렴과 같이 증거됩니다.

사도행전, Act 2:43 (NKRV)

43 사람마다 두려워하는데 사도들로 말미암아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나니

사도행전, Act 5:5 (NKRV)

5 아나니아가 이 말을 듣고 엎드러져 혼이 떠나니 이 일을 듣는 사람이 다 크게 두려워하더라

사도행전, Act 5:11 (NKRV)

11 온 교회와 이 일을 듣는 사람들이 다 크게 두려워하니라

사도행전, Act 9:31 (NKRV)

31 그리하여 온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 교회가 평안하여 든든히 서 가고 주를 경외함과 성령의 위로로 진행하여 수가 더 많아지니라

사도행전, Act 19:17 (NKRV)

17 에베소에 사는 유대인과 헬라인들이 다 이 일을 알고 두려워하며 주 예수의 이름을 높이고

5. 하나님을 경외함, 하나님의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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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신약의 교회가 그 능력과 삶에 있어서 가장 정점에 다다른 모습을 특징짓는 묘사는 다름아닌 ‘하나님을 경외함’입니다. 그리고 교회사를 통털어 교회가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회복되고 새롭게 되고 하나님의 말씀이 흥왕하는 때마다 예외 없이 동일한 모습을 대표적인 특징으로 보여왔습니다. 신자 개개인의 삶이 그랬고, 그리스도인 가정의 일상이 그랬고, 교회 공동체의 삶이 그랬습니다. 과연 하나님의 자녀가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이 세상을 지나가는 것은 죄인들을 하나님의 권속으로 양자삼으신 하늘 아버지의 뜻이 분명합니다(베드로전서, 1 Pet 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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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전서, 1 Pet 1:17 (NKRV)

17 외모로 보시지 않고 각 사람의 행위대로 심판하시는 이를 너희가 아버지라 부른즉 너희가 나그네로 있을 때(your temporary residence, LEB)를 두려움으로 지내라

과연 하나님을 경외함은 신자의 일생의 표지로 드러나야 합니다. 우리의 거룩이 하나님의 뜻인 것과 마찬가지로 신자가 이 땅을 나그네로 지나가는 내내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살아가는 것은 자녀를 향한 하늘 아버지의 뜻입니다,

시편, Ps 2:11 (NKRV)

11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섬기고 떨며 즐거워할지어다

시편, Ps 119:120 (NKRV)

120 내 육체가 주를 두려워함으로 떨며 내가 또 주의 심판을 두려워하나이다

잠언, Prov 28:14 (NKRV)

14 항상 경외하는 자는 복되거니(happy)와 마음을 완악하게 하는 자는 재앙에 빠지리라

고린도후서, 2 Cor 7:1 (NKRV)

1 그런즉 사랑하는 자들아 이 약속을 가진 우리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하게 하자

빌립보서, Phil 2:12 (NKRV)

12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히브리서, Heb 12:28 (NKRV)

28 그러므로 우리가 흔들리지 않는 나라를 받았은즉 은혜를 받자 이로 말미암아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섬길지니(참고, 시편 2:11)또는 감사하자

6. 불신자의 특징, 하나님 두려워함이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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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에(그도 그럴 것이), 성경은 그리스도를 거부하고 대적하는 세상과 여기에 속한 모든 자들의 삶의 특징이 다름아닌 ‘하나님을 경외함이 없는’ 것이라고 합니다(로마서, Rom 3:18),

로마서, Rom 3:18 (NKRV)

18 그들의 눈 앞에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느니라 함과 같으니라

시편, Ps 36:1 (NKRV)

1 악인의 죄가 그의 마음속으로 이르기를 그의 눈에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빛이 없다 하니

하나님은 이런 세상을 향하여 심판을 경고하시며 돌이켜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그에게 영광을 돌리라고 복음을 전하십니다(요한계시록, Rev 14:7),

요한계시록, Rev 14:7 (NKRV)

7 그가 큰 음성으로 이르되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라 이는 그의 심판의 시간이 이르렀음이니 하늘과 땅과 바다와 물들의 근원을 만드신 이를 경배하라 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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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공통적으로 말합니까? ‘하나님을 경외함’은 구약시대만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신구약시대 모두는 물론이고 영원토록 하나님의 자녀가 누리는 복입니다.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으로 우리 죄를 사하시고 자녀삼으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다름 아닌 ‘하나님을 경외’하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시편, Ps 130:4; 예레미야, Jer 33:8, 9),

시편, Ps 130:4 (NKRV)

4 그러나 사유하심이 주께 있음은 주를 경외하게 하심이니이다

예레미야, Jer 33:8–9 (NKRV)

8 내가 그들을 내게 범한 그 모든 죄악에서 정하게 하며 그들이 내게 범하며 행한 모든 죄악을 사할 것이라 9 이 성읍이 세계 열방 앞에서 나의 기쁜 이름이 될 것이며 찬송과 영광이 될 것이요 그들은 내가 이 백성에게 베푼 모든 복을 들을 것이요 내가 이 성읍에 베푼 모든 복과 모든 평안으로 말미암아 두려워하며 떨리라

7. 나에게는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을 경외함”이 있는가?

보십시오! 이것은 제 말이 아닙니다. 성경을 통해 계시된 하나님의 뜻입니다.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라는 증거는 다름아닌 하나님 복음의 은혜에 두려워하며 떠는 것입니다. 나의 죄 때문에 독생자도 아끼지 않고 내어주사 모든 죄악에서 정하게 하시며 모든 죄를 사하신 것은 주를 경외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은 제사보다 경외함을 기뻐하십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알고 끊임없이 그 하나님을 의식하며 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외경과 예배, 깨어 존중하며 하나님을 슬프게 하는 것을 두려워함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는 말은 다름아닌 하나님을 경외함이 제사보다 낫다는 말입니다. 코람데오의 삶이 아니고 무엇입니까?

무엇보다 하나님을 경외함은 하나님의 법에 순종하는 것과 긴밀히 결부됩니다(신명기, Deut 5:29; 8:6). 하나님의 거룩하심, 하나님의 주권과 위엄에 걸맞는 마음가짐으로 사는 것입니다(이사야, Is 8:13). 한마디로, 누가 보든 안보든 하나님이 금하신 과일을 만지기를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지옥불에서 고통받는 것보다 내 죄를 위해 죽으신 그리스도를 거스르는 죄와 짝하기를 더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죄는 모양이라도 버리는 것입니다(로마서, Rom 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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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에 하나님의 구원과 상관없는 자들의 공통적으로 갖는 중심적인 특징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함이 없는 것입니다. 입술로는 뭐라고 하든, 어떻게 청산유수로 성경을 인용하며 기도하든, 사람들 앞에는 어떤 모습으로 드러나든 그의 마음 속으로는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순간순간이 하나님을 향한 반역과 폭동입니다. 그의 눈 앞에는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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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에는 두 가지 부류의 사람만 존재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자와 하나님 경외함이 없는 자입니다. 당신은 누구입니까? 당신의 마음은 당신이 어디에 속했다고 합니까? 교회를 다니고 세례를 받고 중직자로 살고 설교자로 목사로 살고 교회를 개척하고 하는 이런 모든 것은 선하고 가치가 있는 소중한 일들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것들은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핵심적이고 공통적인 표지는 아닙니다. 애굽의 술사들이 모세를 통한 하나님의 재앙가운데 몇 가지를 흉내낸 것과 같이 필요에 따라 누구나 할 수 있는 일들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은 애굽의 술사들이 흉내낼 수 없는, 오직 하나님만이 친히 영혼에 심으시는 영생하기까지 자라가는 씨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합니까? 이 경외함 때문에 자신의 언행심사를 삼가할 정도로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믿고 그 앞에서 두려워함으로 주의 말씀을 따라 살아갑니까? 이 경외함은 당신의 삶에서 어떤 모습으로 드러납니까? 당신의 아내가, 남편이, 자녀가, 직장 동료가 어떤 식으로든 그것을 인정합니까?

주께서 우리를 구속하신 것은 하나님을 경외하게 하기 위함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다윗이 말한 것처럼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섬기고 떨며 즐거워” 합니까? (시편, Ps 2:11) 베드로 사도가 말하는 것처럼 잠시 지나가는 이 세상을 하나님을 두려워함으로 지나가고 있습니까? (베드로전서, 1 Pet 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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