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기 20 장은 위로부터 난 지혜와 땅으로부터 온 지혜를 말하는 야고보 3:13-18에 대한 좋은 예다. 사람의 지혜를 따라 행할 때는 문제의 연속일 뿐이다. 하지만 잠시 멈추어 하나님의 지혜와 뜻을 구하고 하나님의 선하시고 온전하시고 기뻐하시는 뜻을 구할 때 하나님은 우리를 그 길로 인도하신다.
사람은 하나님 알기를 싫어하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들을 악한 정욕에 내버려두셨다. 그렇게 사람들은 자신들의 정욕을 추구하며 스스로를 욕되게 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호색거리로 바꾸어버린다(롬 1:24, 28). 레위인의 첩이 마주한 비참한 결국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이 그녀의 부정함을 심판하시는 것을 본다(삿 19:2).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이 가졌다고 여겼던 거짓된 안전때문에 오히려 멸망에 이르고 있다는 사실과, 예배를 향한 하나님의 계시된 뜻을 떠나는 것은 위험한 행동이라는 것을 모른채 자신들이 누리는 것처럼 보이는 번영을 핑계로 자신들의 우상숭배적인 불경건함을 스스로 정당화하려고 한다.
삼손은 어둠 속을 더듬다가 어둠속에서 생을 마감했다. 하나님이 그를 용서하셨고 그의 힘을 회복시키셨다. 하지만 삼손의 시력과 그의 사역은 회복되지 않았다. 삼손이 승리로 생을 마감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는 도덕적이고 영적인 패배자로서 생을 채웠다. 하나님의 원수를 멸하기는 했지만, 하나님의 친구로서 살지는 않았다. 얼마나 비참한 생이었는가!
삶이 보복으로 얼룩질 때 그 결과는 대개 고통스럽기 마련이다. 삼손의 분노에 그의 장인은 삼손의 신부를 다른 사람에게 주어버린다. 그러자 삼손은 블레셋의 곡식과 나무들을 불살라 보복했다. 이에 대한 보복으로 블레셋은 신부와 그녀의 아버지를 불살랐다. 보복과 앙갚음의 연속이다. 승리자는 없다.
하나님께 순종하는데 전혀 진지하지 않았던 삼손은 결국에는 자신의 멸망으로 그 삶을 마감한다. 자신의 모든 계획이 틀어졌을 때라도 그는 하나님께로 돌이켜야 했다. 하나님께로 돌이켜 인도하심을 받고 순종의 길로 가야했다. 하지만 삼손은 계속해서 끝까지 자신의 길을 완고하게 고집했다.
교만한 사람은 자신이 차지하지 못한 모든 영예를 헛되이 다른데 돌려진 것으로 생각한다. 시기는 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전투를 치러야 할 사람들에게 심각한 다툼을 불러온다. 불의하게 다른 사람에게 비난의 화살을 돌리는 자는 자기 자신이 그것을 당하게 될 것으로 예상해야 한다.
개인의 출생을 둘러싼 환경때문에 비난 받아도 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내 삶을 짓누르는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상황과 일들은 왜 일어나는가? 바른 질문을 하는 것은 모든 해결의 시작이다. 하지만 위의 질문은 그렇게 바른 질문은 아니다. 우리가 물어야 할 것은 이 모든 일을 누가 주관하시는가? 하는 것이다. 하나님이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