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기 7 장

하나님과의 교제에 참여한 자들은 어두운 세상의 허망한 일들에 참여하지 말아야 한다.

 
  • 주요 내용: 구별된 백성으로 남으라는 명령과 대적하는 나라들을 멸하라는 명령

  • 주요 인물: 하나님, 모세

  • 주요 단어: “택하셨나니” (chosen, 신, Dt 7:6)

  • 주요 구절: 신명기, Dt 7:6, 9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백성임에도 모압 사람들의 미혹에 스스로를 방임함으로 하나님의 진노를 샀다(민 25 장). 이스라엘은 지금 이방신들을 숭배하는 것으로 가득한 땅으로 들어가는 중이었다. 타협은 있을 수 없다. 만약 하나님의 언약 백성인 이스라엘 나라가 가나안 족속들의 끔찍한 죄악들로 부정하게 된다면, 그들을 통해 구세주를 보내마 하고 약속하신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되지 못할 위험이 있었다. 온 세상을 복주시는 하나님의 통로가 되기 위해서 이스라엘은 구별된 백성으로 남아있어야 했다(창, Ge 12:1-3).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창세기 12:1–3, NKRV).

하나님의 백성으로 구별된다는 것은 그들에게 계시된 하나님의 계명 만을 따라 사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구별되는 것이다. 태생이 유대인이라고 저절로 구별되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의 계명을 힘써 배우고 믿음으로 순종하는 언행심사가 아니면 구별된 것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교회를 다닌다고, 목회자라고, 스스로 기독교인이라고 생각한다고, 세례를 받았다고, 내가 그렇게 생각한다고, 사람들이 그렇게 이야기한다고 그것이 곧 구별된 것을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은 말씀으로 구별된 가치와 구별된 언사와 구별된 삶을 살아야 할 동기와 책임과 이유와 특권이 분명함을 말해줄 뿐이다.  

구별된 하나님의 백성으로 드러나는 것은 말에 있지 않다. 좋은 교회에 다니는 것에 있지 않다. 다 중요한 일이다. 하지만 그것이 결정적인 것은 아니다. 가치다. 안목이다. 사고다. 삶이다. 구별된 삶이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구별된 삶이다. 하나님의 계명으로 구별된 언사와 행실이다. 하루하루 우리의 언행심사는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씨실과 날실로 수노아져 있어야 한다. 그것이 구별된 삶이다.

여기서 모세는 우리 개개인이 하나님의 계명에 순종해야 할 중요한 동기들을 제공해준다. 우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명령하신 것이다(신, Dt 7:1-5). 우리는 더 이상 우리 자신의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 속한 자들이다(신, Dt 7:6-8). 하나님은 거짓말을 하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신뢰할 만한 분이다(신, Dt 7:9-11). 하나님은 자신이 약속하신 것을 반드시 이루시는 분이다(신, Dt 7:12-26).

불순종은 다름아닌 불신앙에서 나오는 것이다. 이렇게 좋은 약속을 받고도 행하지 않는다는 것은 그것을 믿지 않기 때문이다. 아무리 여러 이유를 대도 그것은 다 핑계일 뿐이다. 하나님의 약속보다 다른 것을 더 믿기 때문이고 의지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렇게 하는 것은 죄다. 심각한 죄다. 손을 내민 하나님의 면전에서 ‘나 당신 못 믿겠소!’라고 돌아서는 것이다. 어찌 이것이 작은 죄라고 할 수 있는가!

오늘날 신자는 잃어버린 자들을 사랑하고 그들의 영혼을 그리스도께로 이끌기 위해 애써야 한다. 하지만 동시에 하나님의 말씀과 계명으로 구별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삶의 자리를 지켜가야 한다(고후, 2 Co 6:14-18; 요일, 1 Jn 2:15-17을 읽으라).

오늘날 많은 교인들이 전도라는 이유로, 사람들을 주께로 이끈다는 이유로 성경이 정한 방식이 아닌 자신이 생각하기에 될 것 같은 방식으로 사람들에게 접근한다. 그들과 비슷하게 행동하고 그들을 편하게 해주면 더 친근감을 갖고 하나님께로 나아올 것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만약 그래서 될 거였으면 한국인구의 반 이상은 신자가 되어야 했다. 몇 십년간을 거의 대부분의 교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고 나름대로 효과적이고 실용적일 거라 생각하는 방식으로 소위 말해 ‘전도’를 해오지 않았는가!

하지만 죄인이 하나님 아버지께로 나아오는 것은 그런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거듭나지 않으면 그 누구도 아버지께로 나아갈 수가 없다. 아버지가 이끌지 않으면 아무도 성자께로 나아갈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정해주시고 명령하신 길을 따르지 않고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는 것은 주제 넘는 짓이며, 스스로를 하나님보다 더 지혜로운 것으로 여기는 것이다. 내가 그렇게 할 때 오히려 나는 그 영혼과 하나님 사이를 가로막을 뿐이다.  

어떻게 우리는 원수들의 강한 진을 훼파할 것인가? 다음 말씀을 읽고 묵상하라: 고후, 2 Co 10:1-6; 엡, Eph 6:10-20.

 

 
Previous
Previous

신명기 8 장

Next
Next

신명기 6 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