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유함(Meekness), 하나님이 가장 귀히 보시는 신자의 성품 | 마태복음 5:5


하늘의 “별들의 수효를 세시고 그것들을 다 이름대로 부르시는”(시편 Ps 147:4) 하나님께 귀한 것은 무엇일까요? 산들도 바다도 다 가지신 하나님이(시편 Ps 96:4,5) 소중히 여기시는 것은 무엇을까요? 그 앞에서는 하늘의 별도 깨끗하지 못하고(욥 Job 25:5) 천사도 그 얼굴을 가리는(이사야 Is 6:2) 하나님께서 귀히여기시는 것은 무엇일까요? 이런 하나님께 “구데기 같은 사람, 벌레같은 인생”이(욥 Job 25:6) 무엇을 드려 감동하시게 하겠습니까?

이 세상이 귀하게 여기는 것들-금, 은, 부동산, 재산, 권세, 명예, 교육, 지식, 기술, 인맥, 외모, 직장, 평판 등-을 하나님은 귀히 여기지 않습니다. 천지의 주재요 만물을 그 뜻대로 다스리시는 거룩하신 하나님께 이런 것들이 다 무엇이란 말입니까? 세상 사람들의 부귀영화와 자랑스러워하는 것들이 하나님께 다 무엇이란 말입니까? 여호와 하나님은 “말의 힘이 세다 하여 기뻐하지 아니하시며 사람의 다리가 억세다 하여 기뻐하지 아니” 하십니다(시편 Ps 14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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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의 주재이신 하나님께 이 생의 자랑이 다 무엇이란 말입니까?

그런데 말입니다, 이런 거룩하신 하나님이, 천지의 주재이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이 있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자들이 있다고 합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겸손한 자’ 혹은 ‘온유한 자’입니다.

그렇다면 ‘온유함’이란 무엇입니까? 어떤 것을 의미합니까? 디도서에 따르면 온유함은 ‘화’와 반대되는 믿는자의 태도입니다(디도서 Titus 3:2). 내면의 부드러움과 인자함입니다.


디도서 Titus 3:2 

2아무도 비방하지 말며 다투지 말며 관용하며 범사에 온유함을 모든 사람에게 나타낼 것을 기억하게 하라

그렇다고 해서 젤리와 같이 흐물흐물한 이도저도 아닌 태도를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반석과 요새시요, 피할 바위와 방패와 산성이신 하나님만을 의지함으로 비롯되는 강건함과 관련됩니다.

모세는 온 지면에서 온유함이 승한 사람이었지만 누구보다 강인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모세를 들어 자신의 백성을 바로의 손아귀에서 건져내셨을 뿐 아니라, 약속의 땅으로 이끌어 들이셨습니다.

그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승했던 모세가 애굽의 이스라엘 백성들을 약속의 땅으로 이끌어 들인 것처럼 그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한” 예수 그리스도는 새언약 백성들을 새예루살렘으로 인도하십니다.

그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승했던 모세가 애굽의 이스라엘 백성들을 약속의 땅으로 이끌어 들인 것처럼 그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한” 예수 그리스도는 새언약 백성들을 새예루살렘으로 인도하십니다.

우리 주 예수님도 온유한 사람이었습니다. 스스로를 온유한 사람으로 묘사합니다(마태복음 Matt 11:29). 하지만 온유함은 필요하다면 모든 것을 하나님의 손에 맡기고 기꺼이 억울한 일을 당하는 태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온유함은 진정한 강함과 관련됩니다(이사야 Is 50:6-7).

참으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의 수치를 개의치 않으시고 그 너머에 있는 즐거움을 바라보시고 그 얼굴을 부싯돌 같이 굳게 하여 십자가를 지는 길로 나아가셨습니다.

무엇보다 ‘온유함’은 하나님께 저항하지 않는 태도입니다.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않고 하나님 안에서 자신의 기쁨을 찾는 태도입니다. 자기를 기쁘게 하고자 하나님을 슬프게 하는 일을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아니, 온유함이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으로 자신의 기쁨을 삼는 심령입니다. 참으로 예수님의 기쁨은 하늘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데 있었습니다(요한복음 Jn 4:34; 6:38).

참된 온유함은 더이상 자기변호를 일삼지 않습니다. 자기 안에는 아무 것도 변호할 만한 것이 없음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자기 연민에 빠지지 않습니다. 결코 자신을 측은히 여기지 않습니다. 과연 예수게서 말씀하신 충성스런 종과 같이 힘써 자신의 일을 행한 후에도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가 하여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고 생각합니다(누가복음 Lk 17:10).

모세를 비롯하여 하나님의 집의 아들되신 예수 그리스도에 이르기가지 하나님의 집의 충성된 종들은 하나같이 '온유함’을 지배적인 성품으로 합니다(히 3:2-6).

모세를 비롯하여 하나님의 집의 아들되신 예수 그리스도에 이르기가지 하나님의 집의 충성된 종들은 하나같이 '온유함’을 지배적인 성품으로 합니다(히 3:2-6).

온유한 사람은 자신의 한계와 분수를 잘 압니다. 그리고 타인을 선대하고 인자하게 대합니다(야고보서 James 3:13-18). 자기 스스로는 하나님 앞에서 죄책과 정죄 뿐 임을 알기에 자신을 거스른 사람에 대해 악감을 품을 생각도 못합니다.

온유함은 어떤 종류의 자기만족이나 자존감, 혹은 자긍심도 갖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자기 만족을 위해 살지 않습니다. 물고 먹히는 경쟁이나 자기추구와는 상관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를 믿고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음으로 만족할 줄 압니다(디모데전서 1 Tim 6:8).

온유함은 무엇보다 하나님의 독생자를 가장 닮은 태도요, 독생자의 피로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들에게서 드러나는 거듭난 영혼의 품성입니다. 그 안에 독생자의 성령이 충만히 거하심으로 그의 삶에서 맺어지는 초자연적인 열매입니다. 실제로 우리가 잘 암송하는 갈라디아서 5장의 성령의 열매의 목록(사랑, 희락, 화평, 오래참음, 자기, 양선, 충성, 온유, 절제, 갈라디아서 Gal 5:22-23)은 하나같이 온유함을 동의어로 갖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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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의 삶이라는 나무에 맺힌 성령의 열매들은 모양과 이름은 다르지만 ‘온유함’이라는 공통된 자양분을 가득 머금고 있습니다.

온유한 성품의 대척점에 있는 성품으로 정욕과 화를 들 수 있습니다. 온유함이 성령의 열매라면 정욕과 화는 육체의 열매입니다. 마음에 맺히는 마귀의 열매입니다. 이 세대의 풍조를 따르는 이 세대에 속한 사람들은 온유한 사람을 얕잡아보고 깔보기 일수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온유한 사람이 가장 용감하고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온유한 자는 용사보다 낫고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낫습니다(잠언 Prov 1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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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로 하나님을 섬기고 싶습니까? 하나님이 부르신 일(아내, 남편, 부모, 교회의 지체, 이웃, 일터, 직장 동료, 학교, 목사, 집사, 장로 등 무엇이 되었든)에 신실하고 충성되기를 원합니까? 그렇다면 먼저 “모든 겸손과 온유로” 각자의 부르심을 받은 일에 힘쓰십시오. 이것이 바로 우리가 부르심을 받은 일에 합당하게 행하는 길이라고 합니다(에베소서 Eph 4:1-2). 진실로 하나님을 섬기고 싶습니까? 그렇다며 무엇보다 사람의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이 온유함이라는 은혜로 자기 마음을 장식할 줄 알아야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온유함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그 무엇보다 값진 것이기 때문입니다(베드로전서 1 Pet 3:4).

그 속사람을 모든 겸손과 온유로 장식하는 것은 하나님의 눈 앞에 가장 값진 보화라고 합니다(벧전 3:4).

그 속사람을 모든 겸손과 온유로 장식하는 것은 하나님의 눈 앞에 가장 값진 보화라고 합니다(벧전 3:4).

그러나 온유함은 또한 사람들이 보기에도 아주 매력적인 태도입니다. 온유한 사람은 다른 사람들보다 더 사람들의 마음을 끕니다. 어떤 직장 동료와 함께 일하고 싶습니까? 어떤 아내와 살고 싶습니까? 어떤 남편과 살고 싶습니까? 아내가 어떤 아내로 드러나기를 바랍니까? 남편이 어떤 남편으로 드러나기를 바랍니까? 자녀가 어떤 자녀로 자라가기를 바랍니까? 어떤 사람을 이웃으로 두고 싶습니까?

그렇다면 나는 어떻습니까? 온유한 아내, 온유한 남편, 온유한 직원, 온유한 상사, 온유한 부모, 온유한 이웃으로 살아가고 있습니까? 그런 사람으로 자라가고 있습니까(마태복음 Matt 7:12)?


마태복음 Matthew 7:12 

12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어떻게 하면 우리 주께서 보여주신 온유함을 닮을 수 있습니까? 어떻게 하면 이런 온유함에 자라갈 수 있습니까? 어떻게 하면 이 땅에서도 온유한 자의 복과 평안을 누릴 수 있습니까? 너무나 감사하게도 길이 있습니다. 모호하고 막연하지 않은 너무나 분명한 초청이 우리에게 주어져 있습니다. 들어보십시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마태복음 Matt 11:29-30).

신자는 ‘그리스도의 학교’라 불리는 삶의 여정을 통해 그리스도의 영과 더불어 하나님의 계명을 따라 살도록 부르심을 받은 자들입니다,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갈 5:16).

신자는 ‘그리스도의 학교’라 불리는 삶의 여정을 통해 그리스도의 영과 더불어 하나님의 계명을 따라 살도록 부르심을 받은 자들입니다,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갈 5:16).

모든 온유와 겸손의 원천이신 주 예수께서 부르십니다. 자기와 함께 멍에를 메고 직접 자기에게서 배우라고 하십니다. 무엇보다 그 멍에는 쉽고 그 분이 부르신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라고 하십니다. 예수를 당신의 구주와 주님으로 믿으십니까? 하나님을 사랑합니까? 그렇다면 그 분이 주신 계명을 따라 행하십시오(요한일서 1 Jn 5:3).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에게 그의 계명은 무거운 것이 아닙니다.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마태복음 Matt 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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