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 바울과 빌립보 교회 | 빌립보서 004

성경을 통해 본 사도 바울과 빌립보 교회와의 관계.

바울과 빌립보 교회의 관계는 그리스도안에서 한 형제 된 관계의 전형을 보여줍니다. 특별히 밤낮없이 말씀과 기도로 교회를 섬기는 하나님의 종(말 그대로 종입니다)과 자신들을 말씀으로 양육하는 자와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하는(갈 6:6) 교인들 간의 관계가 어떤 모습인지를 잘 보여줍니다.

빌립보서를 보면 빌립보 교회는 자신들의 좋은 것 잘한 것 칭찬받을만한 일만 바울과 나누지 않았습니다. 자신들의 어려움과 문제 역시 바울과 나누고 그에게 목회적 도움을 구했습니다.

빌립보서를 보면 빌립보 교회는 자신들의 좋은 것 잘한 것 칭찬받을만한 일만 바울과 나누지 않았습니다. 자신들의 어려움과 문제 역시 바울과 나누고 그에게 목회적 도움을 구했습니다.

바울과 빌립보 교회는 서로를 잊지 않았습니다. 빌립보 교회는 바울의 사역을 도왔습니다(고후 11:7-10; 빌 4:15-16). 바울이 제 이차 선교여행때 원래의 계획과 달리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마게도냐로 방향을 틀었고 빌립보 교회가 섰습니다. 하나님의 섭리가운데 제 삼차 선교여행에서도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는 길에 바울의 계획과 달리 바울을 해하려는 공모로 인해 마게도냐를 거쳐가게 됩니다(행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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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얼굴을 보지 못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빌립보 교회를 향한 바울의 각별한 마음과 사랑은 물론 빌립보 교회의 바울을 향한 감사와 사랑도 더해갔습니다. 더구나 빌립보교회의 이런 관계는 각별한 마음은 바울에게만 집중된 것도 아니었습니다. 바울과 함께 하던 디모데와 빌립보 교회와의 관계 역시 복음 안에서 두터워졌을 것입니다. 성경 다른 곳에서 언급되고 있는 바울과 빌립보 교회사이에 필요한 일들을 돕는 디모데의 모습에서(행 19:21-22) 이런 사실을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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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의 제 삼차 선교여행을 통해서는 빌립보 교회가 예루살렘의 유대인 형제들의 교회를 돕는 일에 연보로 함께했습니다. 이방인으로 구성된 교회가 유대의 신자들로 이루어진 예루살렘 교회의 물질적 필요를 돌아본 것입니다. 초대교회 당시의 정치, 문화, 종교적 분위기에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습니다. 자신의 서신서들에서 언급하는 것처럼 이런 실제적인 나눔과 교제를 통해 사도 바울은 개교회의 연합과 일치를 넘어서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한 몸 된 교회 간의 연합과 일치를 확인시키고 공고히 하고자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받은 하나님과의 화해는 인간 관계의 화해와 화목의 토대와 원동력이 됩니다. 그리스도안에서 하나님과 화해되었다면, 교회안에서 화해되지 못할 관계는 없습니다. 하나님과 화해됨으로 증오와 분리의 원천이 되는 모든 원수된 것이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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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24:17을 보면 바울이 마침내 이방형제들에게서 모은 연보를 예루살렘으로 가져온 것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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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해 만에 내가 내 민족을 구제할 것과 제물을 가지고 와서” (사도행전24:17, NKRV)

그러나 바울은 예루살렘에서 체포되어 가이사랴에서 구금되기에 이릅니다. 그렇게 약 이년 여의 시간을 갇혀 보내는 동안 바울은 로마시민으로서 가이사에게 상소를 했습니다. 이 때가 대략 AD 60 경입니다. 이 상소로 바울은 로마로 압송되었고 로마에서 가택연금된 상태에서 판결을 기다렸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도 바울은 계속해서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하기를 쉬지 않았습니다. 디모데에게 편지한 것처럼 바울은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복음 증거에 항상 힘썼습니다. 그리고 오히려 바울이 갇힌 것을 통해 복음의 진보가 일어났습니다. 심지어 제국의 중심인 로마의 심장부에까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전해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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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 바울은 갇혔지만, 바울이 증거하는 복음은 갇히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로마 제국의 심장부에서부터 증거되기 시작했습니다.

빌립보서1:12–13 (NKRV)

형제들아 내가 당한 일이 도리어 복음 전파에 진전이 된 줄을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라 이러므로 나의 매임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시위대 안과 그 밖의 모든 사람에게 나타났으니.”

이런 바울의 상황을 전해들은 빌립보 교회는 자신들의 지체중 하나인 에바브로디도를 보내 갇혀있는 바울의 필요를 채우도록 했습니다. 교회가 어려움에 처한 형제를 위해 보낼 수 있는 선물가운데 이보다 더 귀한 것이 있을 수 있을까요? 자기 들 중 하나를 바울에게 보낸 것입니다. 에바브라디도만 간 것이 아닙니다. 사실은 그를 통해 모든 교회가 바울의 상황에 참여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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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을 보면 바울을 돕는 와중에 에바브라디도가 거의 죽을 지경에 이를 정도로 심각하게 병이 들었습니다. 이소식을 들은 교회는 당연히 그를 위하여 염려하고 기도했습니다. 감사하게 에바브로디도는 병에서 나았고, 그런 그를 바울은 교회에 전하는 자신의 편지를 들려 그를 위해 염려하고 기도하는 교회에게로 다시 돌려보낼 참이었습니다.

“그가 너희 무리를 간절히 사모하고 자기가 병든 것을 너희가 들은 줄을 알고 심히 근심한지라 그가 병들어 죽게 되었으나 하나님이 그를 긍휼히 여기셨고 그뿐 아니라 또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내 근심 위에 근심을 면하게 하셨느니라” (빌립보서 2:2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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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립보서를 보면 빌립보서를 받을 당시 빌립보 교회 내부적으로 바울의 목회적 도움을 필요로 하는 문제가 있었던 것을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빌립보 교회는 에바브로디도를 보냄으로 그가 바울과 함께 있으면서 그의 필요를 돕는 동안 디모데를 자신들에게 보내 그 문제를 해결해주기를 기대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빌립보 교회가 자신들의 좋은 것 잘한 것 칭찬받을만한 일만 바울과 나누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자신들의 어려움과 문제 역시 바울과 나누고 그에게 목회적 도움을 구했습니다. 초입에 언급한 갈라디아서 6:6의 말씀처럼 과연 빌립보 교회는 자신들의 목사인 바울과 더불어 모든 좋은 것을 함께 나누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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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 바울은 에바브로디도 편에 보낸 편지에서 빌립보교회 성도들 안에서의 어려움에 “모든 일을” 원망과 시비가 없이 하라고 합니다.

하지만 빌립보 교회의 바람과 달리 디모데가 바울을 곁을 떠날 수가 없었던 사정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다시 건강을 회복하게 된 에바브로디도라도 속히 되돌려 보내기로 결정했습니다. 빌립보 교회가 바울을 걱정하는 것을 넘어서 이제 에바브로디도가 중병에 신음하고 있다는 기별에 놀라고 염려하고 기도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빨리 형제들의 염려를 덜어주기를 원했습니다. 그리고 교회에 대한 사랑과 감사와 그리움의 마음도 전하고 싶었습니다. 또한 빌립보 교회가 기별했던 공동체의 어려운 문제에 대한 바울의 편지도 전달하고자 했습니다. 그렇게 빌립보 교회에 전해진 바울의 편지가 바로 우리 앞에 있는 ‘빌립보서’입니다.

빌립보서를 흔히들 “기쁨의 서신”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빌립보서를 ‘기쁨의 서신’이라고 할 때 반드시 기억해야 할 사실이 있습니다. 빌립보서를 쓸 당시 바울은 ‘매인바된’ 상태였고 빌립보서를 받는 교회 공동체는 핍박과 어려움가운데 있었습니다.

빌립보서를 흔히들 “기쁨의 서신”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빌립보서를 ‘기쁨의 서신’이라고 할 때 반드시 기억해야 할 사실이 있습니다. 빌립보서를 쓸 당시 바울은 ‘매인바된’ 상태였고 빌립보서를 받는 교회 공동체는 핍박과 어려움가운데 있었습니다.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되고 빌립보 교회에 보내어진 이 편지가 이제 성령의 보존하심으로 이천 년이 지난 지금 교회에 속한 신자에게 보내는 그리스도의 편지로 우리 손에까지 배달되었습니다. 나에게 보내신 그리스도의 편지로 내 앞에 있습니다. 시대나 우리가 처한 상황 자체는 당시 빌립보 교회가 처한 상황과 같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빌립보서를 통해 빌립보 교회에 말씀하신 그리스도께서 성령안에서 이 말씀으로 지금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나에게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성령이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을 귀를 기울이고 잘 들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어떻게 듣는지 스스로 주의하라” (누가복음 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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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은 빌립보서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빌립보에 사는 모든 성도……에게 편지하노니”라고 시작합니다. 이는 빌립보만이 아니라 말 그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성도”를 가리킵니다. 빌립보성의 성도들로 시작해 오고 오는 세대의 모든 지역의 모든 성도들에게 그리스도께서 보내는 편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는 모든 성도들에게 주신 편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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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이 모든 날 마지막에는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히브리서 1:2).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히브리서 4:12).

하나님의 말씀이 “살아있다”는 사실에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하나님이 지금 나에게 하시는 말씀임을 알 수 있습니다. 믿음으로 성경의 말씀을 순종하는 것은 곧 지금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살아있다”는 사실에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하나님이 지금 나에게 하시는 말씀임을 알 수 있습니다. 믿음으로 성경의 말씀을 순종하는 것은 곧 지금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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