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립보서

“오직 너희는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 (빌립보서 1:27).

빌립보서 3:1 | 그리스도인의 기쁨을 위한 하늘의 처방 | 빌립보서 공부 #130

환자가 의사의 처방을 따르지 않고 건강하기를 기대할 수 없듯, 신자가 그리스도께서 이르신 말씀을 거스르면서 기쁘기를 기대할 수 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신자라 할지라도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 자는 그리스도인의 기쁨을 누릴 수 없습니다. 오직 순종하는 자라야 기쁨을 누립니다.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요한복음 15:11, NKR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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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립보서 3:1 | 누구나, 하지만 아무나 누릴 수 없는 기쁨 | 빌립보서 129

예수를 주와 구주로 영접하고 살아가지 않는 영혼은 알 수 없는 기쁨입니다. 거듭났다 할지라도 주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 신자는 누릴 수 없습니다. 주의 말씀에 순종함으로 믿음으로 주를 향하여 돌이키기를 거부하는 영혼은 누릴 수 없는 기쁨입니다.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 (누가복음 5:32, NKRV) ‌

이 기쁨은 오직 그리스도안에 있는 신자들, 그것도 주의 말씀을 듣고 따름으로 주를 섬기는 신자들만이 그 안에 거하시는 성령을 통해 누릴 수 있는 기쁨입니다. ‌

“사람이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르라 ...... 사람이 나를 섬기면 내 아버지께서 그를 귀히 여기시리라” (요한복음 12:26, NKRV). ‌

이 기쁨은 그렇게 성자 예수를 섬기는 자들을 귀히 여기시는 성부 하나님의 기쁨에 현재적으로 참여하는 기쁨입니다. 하늘에 계신 성부 하나님의 기쁨이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우리 마음 판에 울리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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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과 모든 총명으로” (빌립보서 1:9) | 빌립보서공부 #12

9절에서 “지식과 총명”은 그리스도인의 사랑과 짝을 이룹니다. 그리스도인의 사랑은 지식과 총명과 더불어 자랍니다. 지식과 총명이 더할 수록 그리스도인의 사랑이 자라가고, 사랑이 자라갈 수록 지식과 총명이 더해갑니다. 지식과 총명은 사랑이라는 물결을 보호하고 그 대상에게까지 풍성하게 흡족하게 다다르게 하는 수로(waterway)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사랑은 단순히 감정이나 느낌이 아닙니다. 이 사랑은 하나님의 성령이 영감하시고 조명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의 원리를 깨달아 알고 그것을 믿음으로 받아 사는 경험적인 지식에 토대를 둡니다. 지식과 총명이 영글은 결과로서의 그리스도의 사랑이기에 그리스도인의 사랑은 이 지식과 총명에 걸맞는 성격을 띕니다. 지식과 총명으로 영글은 사랑이기에 일방적이지도 무분별하지도 않습니다. 사랑받는 대상의 진정한 필요와 만족은 아랑곳 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발휘되는 사랑하는 주체의 이기적인 만족을 위한 사랑이 아닙니다. 사랑하는 주체를 소진시키고 공허하게 하는 비굴한 사랑도 아닙니다. 사랑하는 주체와 사랑받는 대상 모두를 유익하게 하고 만족하게 하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서의 사랑입니다.

빌립보서, Phil 3:10의 ‘내가 그리스도와 그의 부활의 권능을 알고자 하여’라고 하는 바울의 말과도 닿아있는 9절의 ‘지식과 총명’은 지적인 이해만을 가리키지 않습니다. 지적인 이해는 시작일 뿐 그것을 넘어섭니다. 바울이 9절에서 말하고 있는 ‘지식과 총명’은 개개의 신자가 그리스도와의 살아있는 관계를 맺음으로 누리기 시작하는 경험으로서의 지식과 지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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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신의 이유(Perfecter of Salvation, 빌립보서 1:6-8) | 빌립보서 009

바울은 자신이 빌립보 성도들을 생각할 때마다 감사하고 그들로 인해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말합니다. 이제 갓 태어난 빌립보 교회를 거만한 제국의 적대적 이교문화 한 가운데 남겨두고 떠난 바울이, 그것도 감옥에 갇혀 스스로는 그들을 위해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던 바울이 이리 가운데 있는 양무리와 같은 빌립보 성도들로 인해 불안하고 조마조마해하기는 커녕 이토록 기뻐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입니까?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빌립보 성도들의 신앙과 구원이 바울에게 달린 것이 아님을 너무나 잘 알았기 때문입니다. 바울을 통해 복음이 전해졌고, 바울을 통해 교회가 세워졌고, 바울의 목양아래 있던 교회입니다. 하지만 바울은 알았습니다. 자신을 통해 이 모든 일이 이루어졌고 또 이루어지고 있을 뿐 저들 안에서 구원의 선한 일을 주권적으로 시작하신 분은 하나님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자신이 시작하신 일을 반드시 그 뜻하신 대로 이루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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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의 교제(빌립보서 1:5) | 빌립보서 008

그리스도의 복음 안에서 누리는 성도의 ‘교제’는 그리스도인의 존재의 실체요, 그 모양과 성격입니다. 거듭난 하나님 집안 사람들의 본성적인 특징입니다. 그리고 이 ‘교제’는 전인적이고, 총체적이고, 지속적입니다. 무엇보다 복음 중심적입니다. 실제적이고 구체적입니다.

무엇보다 이 교제는 영원한 교제입니다. 이 땅에서만이 아니라 그리스도안에서 영원전부터 시작된 교제요 영원까지 이르는 교제입니다. 인간 관계의 가장 근본이라고 할 수 있는 육신의 가족이 누리는 교제보다도 먼저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더 깊이 누려집니다. 무엇보다 영원토록 이어집니다. 하지만 그에 비하면 육신의 가족과의 교제는 함께 성령으로 거듭나 그리스도안에 있는 하나님의 집 사람들로 드러나지 않는 한 순간적이고 일시적입니다. 그리고 본성적일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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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립보서 (Summa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