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점점 풍성하게 되기를”(Paul’s Prayer, 빌립보서 1:9-11) | 빌립보서 공부 011

빌립보서, Phil 1:9–11

9 내가 기도하노라 너희 사랑을 지식과 모든 총명으로 점점 더 풍성하게 하사 10 너희로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며 또 진실하여 허물 없이 그리스도의 날까지 이르고 11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의 열매가 가득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기를 원하노라

빌립보서 1:6에서 바울은 “너희 안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고 적습니다. 오늘 말씀(빌립보서, Phil 1:9-11)은 바울의 기도입니다. 어떻게 하나님께서 신자의 구원을 예수 그리스도의 날, 즉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시는 날까지 신실하게 이루어가시는지를 바울의 이 기도를 통해 엿볼 수 있습니다.

빌립보서 1:6의 말씀(“너희 안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은 오늘날 교인들 사이에서 자주 오해되고 잘못 인용되는 성경의 여러 구절들 가운데 하나입니다. 이 구절을 빙자해 동일한 하나님께서 성경에 정하신 믿음과 순종의 의무를 도외시합니다. 언약 백성으로서의 구별된 삶의 원리인 성경의 가르침에 무지하고 무관심해도 되는 것처럼 살면서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는다고 생각합니다. 심지어 스스로 위선적인 삶을 살면서도 이 구절을 빙자해 자신의 구원을 단정하고 계속해서 죄 가운데 머물 담력을 얻습니다. 하나님은 내 모습 이대로 받으시고 하나님께서 다 하시기 때문에 ‘내려놓으면’ 된다고, ‘맡기면’ 된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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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서 우리를 통해 그 일을 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어떻게 그 일을 해가시기를 기도합니까? 우리 마음과 행실의 변화와 중단없는 성장입니다. 사도 바울이 빌립보서를 통해 계속해서 이런 사실을 확증해 감에 따라 우리도 빌립보서를 공부하면서 이 주제를 더 자세히 살필 기회들이 있을 것입니다(빌립보서, Phil 2:12-13; 3:12-14).

빌립보서, Phil 2:12–13 

12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13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빌립보서, Phil 3:12–14 

12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13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14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앞에서 말한 것처럼 빌립보서 1:9-11은 빌립보 성도들을 위한 한 문장으로 된 바울의 기도입니다. 짧지만 신자의 구원의 영원과 현재를 아우르는 기도입니다. 여기서 바울이 빌립보 성도들을 위해 기도하는 몇 가지가 중심 주제가 있습니다. 오늘부터 몇 자례에 걸쳐 이 중심 주제들을 살펴보겠습니다. 바울을 통해 성령께서 우리에게 가르쳐주신 이 기도가 매일 나 자신을 위한 기도의 제목으로, 내가 사랑하는 가족과 교회와 형제 자매를 위한 기도의 제목으로 승화되고, 우리네 삶의 경험으로 체화되기를 기도합니다.

A. ‘......사랑이 점점 더 풍성하게 되기를’…(빌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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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절, 10절, 11절로 바울의 기도의 고리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 중의 첫 고리인 9절은 하나님께서 빌립보 성도들의 사랑을 계속해서(ἔτι) 풍성하게 자라가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한글 성경은 “너희 사랑을......점점 더 풍성하게 하사”라고 합니다. 하지만 여기에 ‘계속해서’라는 부사를 더해 ‘계속해서’ “너희 사랑을 점점 더 풍성하게 하사”라고 하는 것이 좀더 원래의 의미를 명확하게 드러내는 번역일 것입니다. 이 부사는 빌립보 성도들 사이에서 이 사랑이 바울이 빌립보서를 쓰고있는 순간에도 이미 발휘되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또한 그렇게 이미 발휘되고 있는 사랑이 거기에 머물거나 변하지 않고, ‘거침없이,’ ‘중단없이’ 더해가기를 바라는 바울의 가절한 기도를 잘 전달해 줍니다. 복음서에 보면 “예수께서 무리에게 말씀하실 때에” (마태복음, Matt 12:46; 17:5; 26:47; 마가복음, Mk 5:35; 14:43; 누가복음, Lk 8:49) 라는 표현이 많이 나오는데 여기서도 이 부사가 사용됩니다. 기존에 어떤 상황이나 상태가 계속되고 있는 것을 의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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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립보서 1:9에서도 이 부사가 사용되고 있다는 것은 빌립보 교회에 그리스도인의 사랑이 이미 부어지고 발휘되고 있는 것을 이야기합니다.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은......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받은” 빌립보 성도들에게 역사하는 이 사랑은 계속해서 자라가도록 부어진 무한한 사랑입니다. 이 사랑은 이 땅으로부터 비롯된 것이 아닙니다. 하늘로부터 온 사랑입니다. 단순한 감정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부활과 승천으로 그의 신부된 교회에 오신 성령하나님입니다. 이 땅에 자리를 펴신 삼위 하나님의 실체로서의 사랑입니다(로마서, Rom 5:5; 요한일서, 1 Jn 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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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Rom 5:5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

요한1서, 1 Jn 4:19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

이 사랑은 무엇보다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독생자를 향한 성부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이어지는 시간에 계속해서 살펴보겠지만 그렇기 때문에 거듭난 신자에게 부어진 이 사랑은 계시된 하나님의 뜻인 말씀을 먹고 자랍니다. 말씀의 신령한 젖을 사모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잘 배우고 믿음으로 화합(순종)할수록 이 사랑은 살아서 역사하고 계속해서 풍성하게 자라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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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의 온전한 성취요 형상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향해 자라갑니다. 신자들에게 부어진 이런 하나님의 사랑은 하나님의 은혜와 마찬가지로 본질상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 전까지는 쉬지 못합니다. 그를 맏아들로 드러나게 하시는 성자를 향한 성부의 사랑입니다. 신자에게 이 사랑이 부어짐으로 신자들은 하나님의 독생자를 향한 사랑의 바다에 뛰어들고 그 대양을 함께 헤엄칩니다. 아들을 향한 성부의 사랑에 참여하는 사랑입니다. 삼위 하나님의 영원한 교제와 사랑으로의 초대입니다(요한일서, 1 Jn 4:16이하) .

요한1서, 1 Jn 4:16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의 안에 거하시느니라

고린도전서 13장을 보면 바울은 전체 장을 할애해 신자에게서 역사하는 이 사랑을 노래한 후 장 말미에서 그것을 믿음과 소망과 비교합니다. 그리고는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고 이 장을 마무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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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사랑은 그리스도인의 삶이 자리한 토대요 가장 중심적인 영적 실체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사랑은 그리스도안에서 받은 새 생명이 맺는 첫 열매입니다. 첫 열매일 뿐 아니라 모든 각각의 그리스도인의 일생을 통해 열매 맺히고 자라는 새 생명의 목적이기도 합니다. 신자 안에서 하나님의 사랑이 자랄 수록 동료 신자들과 이웃들을 향한 사랑 역시 함께 자랍니다. 바로 이 사랑을 힘입어 신자는 동료 신자를 사랑합니다. 그리스도 밖에 있는 이웃을 돌아보고 그들에게 복음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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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음으로 빌립보 교회안에 이미 부어지고 역사하는 하나님의 이런 사랑의 속성을 알고, 빌립보 교회가 처한 안팎의 상황을 볼 때 사랑에 대한 바울의 이런 기도는 더욱 적실하게 다가옵니다. 밖으로부터는 핍박과 세속의 파도가 넘실대고 있었고, 안으로 부터는 분리와 반목의 삐걱거리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빌립보서, Phil 2:1이하; Phil 4:1이하). 무엇보다도 거만한 세속 도시 한 가운데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로서, 하나님 나라의 전령과 전초기지로서 자리하는 하나님의 권속으로서의 부르심을 위해서는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한 삶이 절실합니다. 그리스도를 닮은 사랑이 절실합니다.

바울의 이런 기도가 적절한 이유는 또 있습니다. 빌립보 교회가 처한 이런 암담한 상황이야 말로 사실은 하나님의 사랑이 가장 그 빛을 발할 수 있는 때이기 때문입니다. 다이아몬드가 검은 벨벳 위에 놓였을 때 가장 영롱한 빛을 발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이렇게 어두운 때야 말로 신자 개인과 교회에 부어진 사랑이 가장 제대로 발휘되고 무럭무럭 자랄 수 있는 때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이 흉내낼 수 없는 그리스도인의 사랑의 실체와 진가가 확연히 드러나고 더욱 더 풍성하게 자라갈 수 있기는 때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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