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과 모든 총명으로” (빌립보서 1:9) | 빌립보서공부 #12

이 시간부터는 몇차례에 걸쳐 빌립보 성도들을 위한 바울의 기도(빌립보서, Phil 1:9-11)에 포함된 몇 가지 중요한 요소들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세절에 걸쳐 기록된 이 기도는 한 문장으로 이루어져있습니다. 그리고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신자의 일생에 걸쳐 드러나고 이루어져야 할 경건의 중요한 요소들이 각 절을 통해 이 사슬처럼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전 시간에 우리는 서론 격으로 “사랑이 더욱 풍성하게 되기를”바라는 바울의 기도를 살펴보았습니다. 오늘은 빌립보서 1:9에서 사랑과 더불어 더욱 풍성하게 자라가야 할 것으로 바울이 언급하는 “지식과 모든 총명”에 관하여 살펴보겠습니다(빌립보서, Phil 1:9). 그리스도인의 사랑은 “지식과 모든 총명”이 더할 수록 더욱 더 풍성히 자라고, 그렇게 사랑이 풍성해져 갈수록 “지식과 모든 총명”이 더욱 발휘됩니다. 그리스도인의 사랑에서 자라가고 싶습니까? “지식과 모든 총명”을 더해가십시오. 이 시간에는 바로 이 “지식과 모든 총명”이 무엇인지 살펴보겠습니다.

빌립보서, Phil 1:9 

9 내가 기도하노라 너희 사랑을 지식과 모든 총명으로 점점 더 풍성하게 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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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본문 해설

1. “너희 사랑”

빌립보 성도들 사이에서 이미 발휘되고 있는 사랑입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자라가야 할 그리스도인의 사랑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부어진 하나님의 사랑의 울림으로서의 사랑입니다.

빌립보 성도들 사이에서 이미 발휘되고 있는 사랑입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자라가야 할 그리스도인의 사랑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부어진 하나님의 사랑의 울림으로서의 사랑입니다.

9절의 “너희 사랑”은 빌립보 성도들이 가지고 있는 사랑입니다. 이 사랑은 본성적이고 자연적인 사랑을 말하지 않습니다. 앞에서 살펴본 대로 이 사랑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늘로부터 온 사랑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위로부터 부은 바 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하나님이 먼저 시작한 사랑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기원한 사랑입니다. 영원전부터 삼위 하나님 안에 있는 사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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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항상 구체적인 사랑의 대상을 갖습니다. 대상이 없는 사랑은 환상일 뿐 사랑이 아닙니다. 그래서 ‘사랑하다’는 동사는 항상 목적어를 갖는, 사랑하는 대상을 갖는 타동사입니다. ‘OOO을/를’ 사랑한다고 우리는 말합니다. 빌립보 성도들이 가진 사랑 역시 분명한 대상과 목적이 있는 사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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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랑(agapē)은 ‘사심이나 계산 없이 주는’ 것입니다. 빌립보서, Phil 2:3의 ‘허영’(selfish-ambition)과 대척점에 서는 그리스도의 마음을 본 받은(self-emptying, 빌립보서, Phil 2:5-6) 사랑입니다. 무엇보다 세속적이고 죄악된 자아를 새롭게 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 누리는 결과로서의 사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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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그 사랑의 대상

사랑 자체는 분명한 목적을 갖지만, 바울은 여기서 사랑의 대상을 특정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데살로니가전서, 1 Thess 3:12을 보면 “피차간과 모든 사람에 대한 사랑”이라고 사랑의 대상을 특정합니다. 하지만 여기서는 대상을 특정하지 않고 “너희 사랑”이라고만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빌립보서 1:9의 사랑의 대상은 ‘타자’ 전반을 가리킨다고 하겠습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과 사람들을 향한 사랑입니다. 특별히 함께 하나님의 친 백성된 동료 신자들을 향한 사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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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살로니가전서 3:12 등과 달리 빌립보서에서 바울은 성도들의 사랑의 대상이 아닌 이 사랑이 자라가는 것에 초점을 마추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9절에 빌립보 성도들의 사랑이 자라가기를 기도하면서 ‘너희 사랑을 지식과 모든 총명으로 점점 더 풍성하게 하사’라고 하는 것을 볼 때 여기서 바울이 주목하고 강조하는 것은 특정한 사랑의 대상이라기 보다는 그리스도인의 사랑이 자라가도록 하고 그리스도인의 사랑을 그리스도인의 사랑되게 하는 특징과 성격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지식과 모든 총명”입니다.

3. “지식과 모든 총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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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절에서 “지식과 총명”은 그리스도인의 사랑과 짝을 이룹니다. 그리스도인의 사랑은 지식과 총명과 더불어 자랍니다. 지식과 총명이 더할 수록 그리스도인의 사랑이 자라가고, 사랑이 자라갈 수록 지식과 총명이 더해갑니다. 지식과 총명은 사랑의 물결을 보호하여 목적한 곳까지 다다르되 흡족하게 다다르게 하는 수로(waterway)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사랑은 단순히 감정이나 느낌이 아닙니다. 이 사랑은 하나님의 성령이 영감하시고 조명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의 원리를 깨달아 알고 그것을 믿음으로 받아 사는 경험적인 지식에 토대를 둡니다. 지식과 총명이 영글은 결과로서의 그리스도인의 사랑이기에 이 사랑은 이 지식과 총명에 걸맞는 성격을 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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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한 사랑입니다. 지식과 총명으로 영글은 사랑이기에 일방적이지도 무분별하지도 않습니다. 사랑받는 대상의 진정한 필요와 만족은 아랑곳 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발휘되는 사랑하는 주체의 이기적인 만족을 위한 사랑이 아닙니다. 사랑하는 주체를 소진시키고 공허하게 하는 굴종적이고 소모적인 사랑도 아닙니다. 사랑하는 주체와 사랑받는 대상 모두를 유익하게 하고 만족하게 하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living sacrifice)로 드러나게 하는 관제(drink offering, 빌립보서, Phil 2:17)와 같은 사랑입니다.

빌립보서, Phil 3:10의 ‘내가 그리스도와 그의 부활의 권능을 알고자 하여’라고 하는 바울의 말과도 닿아있는 9절의 ‘지식과 총명’은 지적인 이해만을 가리키지 않습니다. 지적인 이해는 시작일 뿐 그것을 넘어섭니다. 바울이 9절에서 말하고 있는 ‘지식과 총명’은 개개의 신자가 그리스도와의 살아있는 관계를 맺음으로 누리기 시작하는 경험으로서의 지식과 지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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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지식’

여기서 ‘지식’이라고 번역된 이 단어는 단순히 무엇을 아는 것을 넘어서 어떤 것이 참되고 진리임을 의심할나위 없이 분명하고도 또렷이 아는 지식, 그래서 내 안목과 가치와 선택과 판단을 지배하는 지식을 뜻합니다. 그래서 어떤 영어성경은 이 말을 ‘참된 지식’(real knowledge, NASB)이라고 번역합니다. 어떤 주석가들은 이 단어를 ‘완전한 지식’(perfect knowledge, full knowledge, deeper knowledge)라고 번역합니다. 당연히 이런 지식은 모호하거나 막연하지 않고 하나님의 진리인 성경을 지적으로만 이해하는 것을 넘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이 진리들을 주어진 상황에서 날마다 구체적으로 적용하여 맛보아 아는 지식입니다.

모호하거나 막연하지 않고 하나님의 진리인 성경을 지적으로 이해하는 것을 넘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이 진리들을 주어진 상황에서 날마다 구체적으로 적용함으로 맛보아 아는 지식.

모호하거나 막연하지 않고 하나님의 진리인 성경을 지적으로 이해하는 것을 넘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이 진리들을 주어진 상황에서 날마다 구체적으로 적용함으로 맛보아 아는 지식.

b. ‘모든 총명’

‘총명’은 문자적으로는 감각을 통해 인지하는 것을 뜻합니다. 하지만 상징적으로는 도덕적이고 영적이고 실제적인 분별 혹은 감각등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인간이 본성적으로 총명이 어두운 가운데 있고 무지함과 마음의 굳어짐으로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있다고 말합니다(에베소서, Eph 4 :18). 그러므로 이 총명은 영혼의 거듭남과 더불어 주어지는 영혼의 기능이라고 할수 있습니다. 거듭난 생명이 말씀의 젖을 먹고 자라감에 따라 그 생명 안에 주어진 기능인 ‘총명’ 역시 자라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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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명’은 총명이되 ‘모든 총명’이라고 하는 것을 보면 이것 역시 완전하고 참된 총명, 삶의 모든 영역과 하루하루의 일상에서 발휘되고 적용되는 실제적인 총명을 가리킵니다. 잠언에서만 이 말이 스물일곱번이 사용되고 있는 것을 보더라도 ‘모든 총명’은 말씀의 빛을 통해 일상의 구체적인 정황에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과 바른 일을 분별하고 구별하는 실천적인 지혜와 분별력을 뜻한다고 할 것입니다(참고, 골로새서, Col 1:9; 에베소서, Eph. 5:10; 데살로니가전서, 1 Thess. 4:3).

이처럼 바울은 빌립보 성도들에게서 이미 발휘되고 있는 그리스도인의 사랑이 그리스도의 사랑을 경험함으로 더욱 더 자라가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교회 공동체와 개개인의 일상과 가정에서 도덕적이고 영적인 분별력으로 드러날 수 있도록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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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 적용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백성들에게 주신 새 계명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되 온 맘과 뜻과 힘과 정성을 다해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는 한 마디로 그리스도인의 사랑에서 자라가고 온전히 행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지금 빌립보 성도들을 위하여 저들의 공동체와 삶에서 그리스도의 새계명이 순종되고 성취되기를 위하여 기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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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사랑하고 싶습니까? 하나님을 사랑하는 일에 풍성히 자라가고 싶습니까?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와 지체들을 사랑하고 싶습니까? 이 사랑이 풍성해 지기를 원합니까? 진심으로 그렇습니까? 걱정마십시오. 당신이 이런 바람과 소원을 가지기 전에 당신이 그렇게 되는 것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지금 바울이 빌립보 성도들을 위해 이렇게 기도하는 것이 아닙니까? 아니, 승천하신 그리스도께서 성령을 통해 바울의 입술을 통해 자신의 기도를 알리시고, 기록된 이 기도를 통해 지금도 이 땅에 있는 그리스도의 신부를 위해 이 기도를 하고계시고 이 역사를 이루고 계심을 알리시지 않습니까?

어떻게 이루고 계십니까?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이 소원을 두시고 행하게 하십니다. 그렇게 행하는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자신의 지식과 총명을 나누어 주십니다.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시는 하나님의 성령께서 하나님과 그 뜻을 영감하여 알리셨고, 이제 신자 개개인 안에 거하시면서 계시된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아 알게 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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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이 일을 위해 지금 내가 해야 할 일은 무엇입니까? 하나님과 그의 뜻을 아는 지식과 모든 총명에 더욱 자라가기 위해 내가 해야 할 일은 무엇입니까?

기도하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으로부터 온다는 사실은 다름아닌 우리가 이 일을 위해 간구해야 할 것을 의미합니다.

성경을 펴서 읽고 배우는 것입니다. 교회에 다닌다는 것이 곧 성경을 잘 배워 아는 것을 담보하지 않습니다. 개개인이 직접 성령의 도우심을 구하는 가운데 날마다 펴서 읽고 배워야 합니다. 그렇게 우리의 생각을 하나님의 계시된 진리로 채워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사고방식과 감정을 그렇게 배운 하나님의 진리에 따라 조율하고 길들이고 질서잡아가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일상의 구체적인 상황들에서 우리의 관점과 안목과 반응이 점점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생각과 뜻을 따라 빚어져 가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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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흔히들 말하는 코람데오(CORAM DEO)의 삶이란 다름 아닌 하나님 앞에서 사는 것입니다. 단순히 하나님 앞에서 산다는 느낌이나 신념을 가지고 산다는 말이 아닙니다. 성소의 므노라가 항상 진설병을 비추듯 하나님의 말씀의 빛을 받아 그 빛 가운데 행하는 것입니다. 주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하나님의 사랑이 그 속에서 온전케 된” 자요 하나님을 그 속에 모신 자라는 것을 믿고 계시된 하나님의 뜻을 따라 항상 자신의 생각과 감정과 발걸음을 삼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성령과 동행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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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할 때 우리는 점점 그 말씀의 주체와 형상이신 그리스도를 닮아가게 됩니다. 모든 상황과 사람들 앞에서 성경적이고 경건한(god-like) 사고와 감정과 행실이 자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다름아닌 하나님을 향한 사랑과 동료 신자들과 인간들을 향한 사랑의 언행으로 드러나게 됩니다. 그리스도께서 그 안에 사시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이란 자기를 위해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며, 이는 다름아닌 그 안에서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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