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위기 16 장

하나님을 경외함이 없는 교만하고 자의적으로 사는 사람은 하나님이 세우시지 않은 자리를 자처하고 살다가 순식간에 넘어진다.

 
  • 내용: 속죄일에 대한 법

  • 주요 인물: 하나님, 모세, 아론

  • 주목할 단어: “원망” (murmur, 레, Lev 16:11).

  • 주목할 구절: 26, 48 (레, Lev 16:26, 48)

I. 가장 중요한 날

속죄일은 해년마다 돌아오는 이스라엘의 절기가운데 가장 중요한 날이었다. 그들의 죄악들을 속죄하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오직 이 날만 대제사장은 지성소에 들어갈 수 있었다. 나답과 아비후가 하나님이 정해준 방식이 아닌 ‘자신들 나름의 방식’으로 속죄일을 행하다가 심판을 받고 죽었다(레, Lev 10). 이처럼 속죄일을 믿음으로 지키는 것은 삶과 죽음의 문제였다.

우리가 조심해야 할 부분이 여기있다.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면서 하나님이 친히 정하지 않은, 말씀을 통해 계시하지 않은 ‘자신들 나름의 방식’으로 하는 것이 항상 위험하다. 그것이 주일을 보내는 것이든, 예배를 드리는 것이든, 교회를 세워가는 것이든, 가정을 세워가는 것이든, 무엇이든 그렇다. 하나님이 말씀을 통해 계시하신 방식을 따라 믿음으로 하지 않으면서도 하나님을 섬기는 것으로 착각하기 쉽상이다.

나답과 아비후가 죽임을 당한 것은 속죄일 제사 자체를 거부해서가 아니다. 하나님이 정하신 뜻을 무시하고 자기 나름의 방식대로 속죄일을 행한 것이다. 돌이키지 않고 불신앙과 무지와 교만한 일상을 이어간 결과 이렇게 드러날 수 밖에 없었다.

2. 가장 중요한 사람

대제사장의 모습은 주 예수를 그려준다. 대제사장의 모습에서 주 예수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대제사장이 섬길 때 그는 홀로 그 일을 받들엇다. 성자 예수 그리스도 역시 영광의 옷을 벗고(빌, Phil 2:5-8), 자기를 믿는 자들을 위해 자기 자신을 거룩하게 하셨다(요, Jn 17:19).

​5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7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빌, Phil 2:5-8)

19 또 그들을 위하여 내가 나를 거룩하게 하오니 이는 그들도 진리로 거룩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이다 (요, Jn 17:19)

대제사장과 예수 그리스도의 차이는 예수 그리스도는 자기 자신을 위해 그 어떤 희생도 드릴 필요가 없었다는 데 있다. 그는 죄가 없었기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 자신은 세상의 죄를 위한 완전하고 궁극적인 희생제물이다(히브리서, Heb 7:23-28을 읽으라).

3. 가장 중요한 이유

대제사장은 세차례 지성소에 들어갔다: (1) 향로를 가지고 들어갔고(레, Lev 16:12-14), (2) 자기 자신의 죄를 위한 피를 가지고 들어갔고, (3) 백성들의 죄를 위한 피를 가지고 들어갔다. 향연은 하나님의 영광의 임재를 가리킨다. 하나님의 영광이 함께 하는 이것이야말로 죄를 구속하는 온전한 목적이다(요, Jn 17:1; 엡, Eph 1:6, 12, 14).

1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이르시되 아버지여 때가 이르렀사오니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들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게 하옵소서 (요, Jn 17:1)

6 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

​12 이는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전부터 바라던 그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14 이는 우리 기업의 보증이 되사 그 얻으신 것을 속량하시고 그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 하심이라 (엡, Eph 1:6, 12, 14)

죄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거룩하신 하나님이 화평으로 함께 하실 수 없다. 진노와 재앙과 심판만이 있을 뿐이다. 하나님이 례위기에 기록된 모든 의식들을 세세히 정하신 것 역시 자기 백성들가운데 거하시고 그들이 하나님과 교제하도록 하기 위한 하나님의 은혜의 발로다. 그리고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성취되었다. 오직 이것을 믿고 순종하는 자라야 그리스도의 공로가 하나님 앞에서 그의 것으로 역사하고 드러날 것이다.

속죄염소는 “제거하다”는 의미를 갖는 아람어에서 온 것이다. 살아있는 염소를 광야로 풀어주는 것은 하나님이 그들의 죄를 용서하신 것을 보여준다(시, Ps 103:10-13)

​10 우리의 죄를 따라 우리를 처벌하지는 아니하시며 우리의 죄악을 따라 우리에게 그대로 갚지는 아니하셨으니 11 이는 하늘이 땅에서 높음 같이 그를 경외하는 자에게 그의 인자하심이 크심이로다 12 동이 서에서 먼 것 같이 우리의 죄과를 우리에게서 멀리 옮기셨으며 13 아버지가 자식을 긍휼히 여김 같이 여호와께서는 자기를 경외하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나니

하지만 이 죄 용서를 위해서는 그렇게 풀어주는 염소 외에 또 다른 염소가 죽어야했다. 나를 대신한 죽음이 있었기에 나의 죄가 동이 서에서 먼 것 같이 하나님 앞에서 나에게서 멀리 옮겨지는 것이다. 구원은 값없이 얻는다. 나의 구원을 위해 내가 한 것도 없고, 할 수 있는 것도 없다. 그렇다고 그것을 위해 값이 지불되지 않은 것도 아니고 값싼 것은 더더욱 아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나의 구원을 위해 죽으셨기 때문이다.

 
Previous
Previous

레위기 15 장

Next
Next

레위기 17 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