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립보서 3:1 | 그리스도인의 기쁨을 위한 하늘의 처방 | 빌립보서 공부 #130

환자가 의사의 처방을 따르지 않고 건강하기를 기대할 수 없듯, 신자가 그리스도께서 이르신 말씀을 거스르면서 기쁘기를 기대할 수 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신자라 할지라도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 자는 그리스도인의 기쁨을 누릴 수 없습니다. 오직 순종하는 자라야 기쁨을 누립니다.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요한복음 15:11, NKRV)

 

1. 우리의 현실과 기쁨

‌그리스도인의 기쁨은 초자연적인 기쁨입니다. 환경과 상황에 무관할 수 없지만 그것에 매이지도 않는 기쁨입니다. 오히려 환경과 상관을 통해 그 능력과 가치와 영광이 빛나는 기쁨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곧 그리스도인은 항상 기뻐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안타깝지만 우리가 원하는 것과 달리 그렇지 못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이런 기쁨을 누리지 못하는 신자도 많습니다. 또한 처음 예수를 믿게 될 때든, 그 이후에든 이런 기쁨을 잠시 누리다가도 이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잃어버리는 경우도 너무나 많습니다.

‌환경이 우리 마음을 짓누릅니다. 관계의 어려움으로 인한 부담이 너무 커 견디기가 어려울 지경입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누려야 할 승리와 기쁨 대신에 우울함과 어두움과 좌절이 다반사입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의 기쁨은 심지어 죽음의 순간에서도 넉넉히 신자를 지키는 기쁨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로마서 8:37, NKRV)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이 기쁨은 너무도 희박하고 낯선 것 또한 사실입니다. 그렇게 하루하루의 일상은 우울하고 무기력하기만 합니다. 이 기쁨의 샘의 근원을 갖지 못한 자들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슬픈 일입니다. 더구나 이런 현실이 대부분의 많은 교인들의 현실임을 부정할 수 없기 때문에 더더욱 슬프게 다가옵니다. 신자들의 많은 가정들이 이런 상황에 있다는 사실이 더욱 가슴을 아프게 합니다.

‌세상에서는 어쩔 수 없다고 우리는 말합니다. ‘마음은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다’는 말로 마치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것처럼 자신의 상황을 정당화합니다. 그리고 주변의 비슷한 모습들을 보면서 그렇게 정당화된 현실을 기정사실화합니다.



‌2. “사람은 다 거짓되되 오직 하나님은 참되시다”

‌당신은 어떻습니까? 속으로 아마 ‘나도 그런 기쁨을 누리기를 원한다.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고 싶다. 하지만 상황이 그렇지가 않다’고 말하고 있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니, 오히려 ‘이런 기쁨이 정말 가능하기나 한 것인가? 그렇게 사는 사람이 누가 있는가? 어떻게 이런 기쁨을 유지한단 말인가?’라고 물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성경을 보십시오. 이 물음에 대한 대답이 하나님의 말씀에 나와있습니다. 우리는 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야 합니다. 신자나 불신자나 모든 인생은 다 거짓말 장이요 오직 하나님만 참되시기 때문입니다.

그럴 수 없느니라 사람은 다 거짓되되 오직 하나님은 참되시다 할지어다 ...... (로마서 3:4, NKRV)

‌더구나 하나님은 우리를 지으신 자요 만물과 만사를 그 선하신 뜻대로 주장하시는 주권자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우리 손에 들린 성경에 그 뜻이 계시되었습니다. 성경은 우리 영혼의 의사요 삶의 주권자되시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우리는 마치 자신의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것은 다 해본 것처럼 말하곤 합니다. 심지어, 성경에서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을 다 해본 남짓인양 어쩔 수 없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거짓말을 하시는 것입니까? 티끌과 같은 인생이 하나님의 말씀을 판단한단 말입니까?

‌“인생들아 어느 때까지 나의 영광을 바꾸어 욕되게 하며 헛된 일을 좋아하고 거짓을 구하려는가 (셀라)” (시편 4:2, NKRV)



‌3. 하늘의 처방

‌그렇다면 답은 하나님의 말씀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영혼의 창조자요, 우리 영혼의 구속자요, 우리 삶의 주인이십니다. 선하신 하나님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런 하나님이 인생에게 계시하신 길을 주의깊게 잘 살펴야 합니다. 중병에 걸려서 그 병을 잘 치료하기로 유명한 의사와 어렵사리 예약해 진료를 받았다고 합시다. 나의 병과 관련하여 그 의사가 내려준 진단과 처방과 요법을 받고도 그것을 무시하는 환자가 있을까요?

‌예를 들어 쉽게 피곤해지고 항상 무기력하고 우울증을 호소하는 환자가 의사를 만났다고 해 봅시다. 약 외에도 의사가 하루에 어떤 운동을 얼마나 어떻게 해야 할지를, 처방약 외에 무슨무슨 식품을 많이 섭취하고 무슨무슨 음식은 줄이고 하는 식이요법 등을 정리해 주었다고 합시다.

‌당장 집에가는 길에 마트에 들러 필요한 것들을 장을 보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의사가 먹지 말라고 한 음식들을 냉장고에서 정리하지 않겠습니까? 의사의 처방대로 운동하기 위해 하루 일정을 그것에 마추어 다시 짜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나는 내 영혼의 기쁨을 위해 하나님께서 정해주신 말씀을 통해 계시하신 ‘처방’을 어떻게 다루고 있습니까? 그 ‘처방’을 제대로 알고 있습니까? 알고 있는 ‘처방’을 따라 삶을 재편하고 삶의 냉장고를 정리하고 있습니까? 이제까지 하지 않아 낯설지만 하나님이 하라고 하시기 때문에 그것을 행하고 있습니까? 이제까지 너무도 익숙해진 습관이고 태도지만 하나님이 그것을 떠나라고 하시기 때문에 그것에서 떠났습니까?

‌우리 몸 상태가 좋아지기 위해 의사의 처방과 진단과 요법을 믿고 따르는 것은 당연하게 생각하면서 그리스도안에서 성경이 명령하고 약속하는 계명들에는 무관심하고 무지하고 무시한단 말입니까? 그렇다면 삶에서 그리스도인의 기쁨을 누리지 못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오히려 그렇게 살면서 기쁨을 기대한다는 것이 말이안됩니다.

‌의사의 정당한 처방을 무시하고 오히려 그 반대로 하면서 건강하기를 기대하고 바랄 뿐 아니라 몸이 나아지지 않는다고 불평을 일삼는 사람이 있다면 뭐라고 하겠습니까? 한술 더떠서 그런 사람이 자신이 건강하지 못한 것을 가지고 의사를 탓한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우리가 그렇게 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그리스도인의 기쁨이 없습니까? 그것을 원합니까? 그렇다면 하나님의 처방에 귀를 기울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따라야 합니다. 바로 앞 포스트에서 말했습니다. 믿음으로 순종하지 않는 신자는 그리스도인의 기쁨으로 기뻐할 수 없다고 말입니다.

‌그리스도인의 기쁨은 그리스도안에서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실시간으로 주시는 기쁨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순종하는 자들이라야 기쁨을 누린다고도 말할 수 있지만, 한 걸음 더 나아가 이런 자들에게는 순종하는 것 자체가 곧 기쁨이기까지 합니다. 그들의 기쁨은 순종하는데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처럼 말입니다.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요한복음 15:11, NKRV)

‌다음 포스트 부터는 하늘의 이 ‘처방’을 몇 가지로 살펴보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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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립보서 3:1 | 누구나, 하지만 아무나 누릴 수 없는 기쁨 | 빌립보서 1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