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수기 15 장

알지 못하고 지은 죄라 할지라도 반드시 그 죄를 속해야 한다. 하나님은 부지중에 죄를 범한 자에게  자비로우시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의 무지가 죄를 정당화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죄인 줄 알면서도 고의로 죄를 범한 자들은 엄중한 심판을 초래한다.

 
  • 내용: 번제(burnt offering)와 낙헌제(freewill offering)

  • 등장: 하나님, 모세, 안식일을 범한 사람

  • 주목할 단어: “제사” (offerings, 민, Num 15:3)

  • 주목할 구절: 민수기, Num 15:30

1. 확신(1-21절).

“너희는 내가 주어 살게 할 땅에 들어가서”라고 하심으로 하나님은 백성들에게 확신의 말씀을 주셨다. 이스라엘 백성의 죄악들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세대는 가나안으로 들어가 그곳을 차지할 수 있도록 하셨다(딤후, 2 Tim 2:11-13).

미쁘다 이 말이여 우리가 주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함께 살 것이요 참으면 또한 함께 왕 노릇 할 것이요 우리가 주를 부인하면 주도 우리를 부인하실 것이라 우리는 미쁨이 없을지라도 주는 항상 미쁘시니 자기를 부인하실 수 없으시리라” (디모데후서, 2 Tim 2:11–13).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요 하나님의 은혜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기들의 힘이나 공로가 아닌 은혜로 가나안으로 들어가 땅을 얻게 되었을 때 그들은 하나님께 감사하고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해 특별히 시간을 내어야 했다.

그것은 신약의 신자도 마찬가지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로만 된 것이고, 모든 시간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는 것이 맞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자는 하나님께서 긍휼을 베푸신 것을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하기 위한 특별한 시간을 가져야 한다. 하루 중에도 그렇지만 특별히 하나님이 구별하여 거룩하게 지키도록 하신 주일은 더더욱 그렇다.

2. 순종(22-29).

하나님께서는 부지중에 범한 죄악들에 대해서는 용서를 받을 길을 제공하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를 위해서는 무고한 짐승이 그 죄 값을 치르고 죽어야 했다. 부지중의 죄라고 해도 죄는 죄다. 그리고 죄의 삯은 사망이다. 당신의 죄를 위해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어야 했다. 하지만 당신의 죄는 부지중에 지은 죄만이 있는 것이 아니다.

죄인줄 알면서도 고의로 지은 죄가 사실은 더 많다. 그러므로 우리는 더욱 더 겸손해 질 수 밖에 없다. 내가 죽어야 했지만, 예수께서 나의 죄 때문에 내가 죽어야 할 죽음을 대신하셨다. 지금 내가 사는 삶은 더이상 나의 삶이 아니다. 또한 내가 나에 대해 자랑할 것이라고는 죄 말고는 아무 것도 없다.

그런 내가 스스로에 대해 자랑하고 주장하는 것은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아니고 내 스스로 이루었다고 말하는 것이고, 이는 오직 은혜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부정하는 것이다. 또한 은혜로 구원 받은 자가 맞다면, 마땅히 죽어야 할 자가 다른 이가 대신 죽음으로 살아가고 있다면 그 사람은 이제 더 이상 자기 뜻대로 살 것이 아니다. 자기를 위해 목숨을 버리신 이의 뜻대로 사는 것이 맞다.

3. 오만함(30-36).

하나님의 율법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주제넘는 오만함(presumption)에 대해서는 결코 용서를 제공하지 않으시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런 죄인들의 공통적인 특징은 자신의 뜻을 관철하고 자기 자신을 모든 관계의 중심에 두기 위해 하나님의 말씀을 멸시하고 하나님의 권위까지도 부정한다.

하지만 겸손하게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그런 자기 중심적인 죄에서 돌이킬 때 하나님은 그런 죄인조차 긍휼로 용서하신다. 하나님은 다윗이 겸비하게 돌이킬 때에 그의 오만한 죄에 대해 그렇게 용서하셨다(삼하 12장을 보라). 하지만 하나님이 그렇게 용서하셔야 할 의무는 없다. 고의로 안식일을 범한 자는 하나님은 결코 만홀이 여김을 받는 분이 아니심을 죽음으로 배울 수 밖에 없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그 사람을 반드시 죽일지니 온 회중이 진영 밖에서 돌로 그를 칠지니라 온 회중이 곧 그를 진영 밖으로 끌어내고 돌로 그를 쳐죽여서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하니라” (민수기, Num 15:35–36).

4. 기억함(37-41절).

옷 단 귀에 다는 슬은 작은 것이었다. 하지만 이것이 상기시키는 메시지는 결코 작지 않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속했다. 따라서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계명에 절대적으로 순종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존중해야 했다.

당신은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존중하는가? 그것을 어떻게 증거하겠는가? 그의 계명과 말씀을 존중함으로 그렇게 한다. 그것은 그의 말씀을 믿음으로 순종하고 자기 마음과 삶을 하나님의 뜻을 따라 구별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의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골로새서, Col 3:1).

당신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값주고 산 하나님께 속한 사람인가? 그것을 믿는가? 그렇다면 당신은 더이상 자신의 뜻대로 살아서는 안된다. 당신의 습관을 쫓아 익숙한 대로 살아서는 안된다. 그것은 자신이 하나님께 속한 자라는 사실을 스스로 부정하는 것이다.

그 반대로 마찬가지다. 하나님의 말씀과 계명을 따라 자신의 생각과 행실을 구별하는 것은 곧 자신이 스스로 주인이 아니라 하나님께 속한 자임을 고백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이 땅에서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복과 위로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이를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셨으니 곧 죽은 자와 산 자의 주가 되려 하심이라” (로마서, Rom 14: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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