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수기 32 장

우리의 기업을 바로 알고 택하기 위해서 우리는 눈에 보이는 것에서 멈추지 말고 그 너머까지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기대할 수 있는 것이라고 해봐야 기껏해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에 이끌리는 것 뿐이다.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이 주시는 복의 언저리에서 살기를 좋아한다. 영적인 복이 아닌, 물질적인 득실에 따른 결정을 한다. 두 지파하고 반 지파(르우벤, 갓, 므낫세 반 지파)는 가나안에서 그들에게 약속된 기업이 코앞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주장하지 않았다.

저들은 다른 지파들이 가나안 땅을 정복하기까지 계속 돕겠다고 모세에게 약속했다. 하지만 저들의 이런 선택은 이스라엘에 분란을 가져왔다. 실제로, 가나안 땅을 완전히 정복한 후에 이 두 지파와 반 지파들은 사람들이 “우리도 이스라엘에 속했다”는 사실을 알도록 하기 위해 제단을 세워야 했다(여호수아 22 장에 기록되어 있다). 저들이 모두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 땅에 있는 자신들의 기업을 주장했다면, 그들 역시 이스라엘 백성인 것을 모두가 알았을 것이다. 그러면 궂이 제단을 세울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우리에게 요단 강을 건너지 않게 하소서”(레, Le 32:5)하는 요구는 “우리를 다시 애굽으로 데려다놔라!” 혹은 “차라리 우리를 광야에서 죽도록 내버려둬라!”고 하는 것이나 다르지 않다. 하나님의 영광이 아닌 물질적이고 물리적인 이득을 따라 우리의 결정이 이루어질 때 우리의 결정은 잘못될 수 밖에 없다(시, Ps 47:4).

4 우리를 위하여 기업을 택하시나니 곧 사랑하신 야곱의 영화로다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우리의 모든 결정 역시 물질적인 이해득실을 따라 이루어져서는 안된다. 그런 결정은 하나님께 영광이 되지 않는 것은 물론, 그렇게 결정을 내리는 당사자가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있지 않은 것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결정은 결국에는 더 크고 뼈아픈 손실과 소용없는 후회를 남길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생각과 가치와 안목을 항상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계시된 뜻인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새롭게 해야 한다. 그렇게 새롭게 된 지각으로 범사에 “하나님의 선하시고 온전하시고 기뻐하시는 뜻” 무엇인지 분별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성령안에서 날마다 우리 몸을 산제사로 드리는 길이다(롬, Rom 12:1-2).

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Previous
Previous

민수기 31 장

Next
Next

민수기 33 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