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보서가 말하는 복있는 사람 (야고보서 1:10-12) | 야고보서 #9

세상과 본성은 시험을 받지 않는 자가 복이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야고보는 시험을 “참는 자”가 복이 있다고 합니다. 여기서 “참는다”는 말은 단순히 이를 악물고 그것이 끝나기를 가디리는 것을 말하지 않습니다. 보다 적극적으로 ‘시험이 다 지나갈 때까지 복음의 진리를 따라 견고하고 신실하게 남아있는 것’을 의미합니다.

I. “법대로 경기하지 아니하면”

이 글을 읽는 사람들 중에는 스스로 부자에 속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부자든 가난하든 이 땅을 지나가는 신자라면 누구나 시험과 시련을 겪습니다.

시험과 시련을 맞닥뜨렸을 때 끝까지 잘 이기는 것이 중요합니다. 시험과 시련을 많이 겪는 것 자체로는 아무런 유익이 없습니다. 시험과 시련은 그 자체는 즐길만한 것도 아닐 뿐더러 그리스도안에서 믿음으로 그것을 지나가지 않으면 그것을 겪는 사람의 본성을 더욱 완고하고 괴팍하게 할 뿐입니다.

하지만, 신자인 우리는 시험과 시련의 주인이 모든 것을 그 선하시고 영광스런 뜻대로 주장하시는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압니다. 그런 과정과 결과를 통해 하나님께서 내 영혼에 이루어가시는 선하신 뜻이 있다는 것도 압니다. 그 뜻이 내 삶에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반드시 지나가되 하나님이 정하신 뜻대로 지나가야 하는 길이라는 것도 물론 압니다(딤후, 2 Tim 2:5).

경기하는 자가 법대로 경기하지 아니하면 승리자의 관을 얻지 못할 것이며 (디모데후서 2:5, NKRV)

시험과 시련으로 결실하게 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신 것처럼, 그렇게 결실에 이르는 방식과 과정역시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풍성한 추수를 믿고 기대하는 농부는 봄과 여름에 그것을 위해 필요한 일을 다합니다. 봄과 여름의 온갖 날씨를 겪는다고 저절로 풍성한 추수를 하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각각의 기후와 날씨에 따라 풍성한 추수를 위한 일들을 합당하게 해야 하는 것입니다.

II. 복음이 가져다준 자유

내 인생의 들녘에서 황혼의 풍성한 추수를 기대하며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무엇입니까? 성경이 말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안에서 하나님이 내게 이루신 놀라운 변화를 배우고 기억하는 것입니다. 지난 며칠간 야고보서를 통해 우리가 배운 이 놀라운 변화의 역사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높아짐’과 ‘낮아짐’입니다. 사회적으로 낮은 처지에 있는 신자는 ‘자기의 높음’을 자랑하고, 부한 자는 ‘자기의 낮아짐’을 자랑하라고 합니다.

우리는 자신이 사회적 처지는 물론 상황에 따라 이 두 가지 범주가운데 하나에 자리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판단은 각자의 몫입니다. 하지만 이러든 저러든 우리는 자신이 처한 환경과 상황에 어떤식으로든 영향을 받습니다. 스스로 비천한 상황에 있다고 생각할 때에는 비굴함이나 비천한 자격지심으로, 그렇지 않을 때에는 은근한 자긍심이나 자만함으로 드러납니다. 죄가 우리 죽을 몸을 틈타 몸의 사욕을 불러일으키는 것입니다. 하지만 신자는 여기에 귀 기울일 필요가 없습니다. 신자의 죄의 몸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고 더이상 죄에게 종노릇하지 않아도 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로마서, Rom 6:6, 12-13).

지금 야고보는 그리스도의 복음이 가져다 준 이 자유가 실제인 것을 보여줍니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이 자유가 믿음으로 역사하는지를 보여줍니다. 가난한 자 뿐 아니라 부자에게도 동일하게 역사합니다. 가난한 자(“낮은 형제”)는 복음안에서 자신의 높아진 것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부한 자는” 복음 안에서 자기의 낮아진 것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가난한 자는 이 세상이 전부가 아님을 생각해야 합니다. 도래하는 천국의 확실함과 더 나은 것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신자의 영광이 아직 다 드러나지 않은 것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부자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이 세상이 전부가 아님을 생각할 뿐 아니라, 잠시 있다가 사라질 것임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세상의 풍조와 유행이 아닙니다. 사람들의 멸시나 인정이 아닙니다. 정말로 중요한 것은 온 우주의 재판장이신 하나님의 평결과 평가입니다. 그것만이 효력이 있고 그것만이 궁극적으로 권위를 가지고 역사하기 때문입니다. 지금 신자의 의와 거룩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가 계시는 하늘 법정에서 나의 자유와 의로움이 이미 선고되었습니다. 이 평결과 선고는 신자안에 거하시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삶에서 그 효력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이런 하늘의 평결과 하나님의 평가는 대부분이 경제적이고 물질적인 상태에 따라 형성이 되는 본성적인 평가와 상반됩니다.

III. 또 하나의 팔복

그래서 여기 야고보서 1:12에 성경주석가들이 마태복음 5장의 팔복에 빗대어 ‘야고보의 팔복’이라고 부르는 복된 말씀이 신자가 당하는 시험과 관련하여 우리에게 선포되고 있습니다(약, James 1:12),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나니 이는 시련을 견디어 낸 자가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이기 때문이라 (야고보서 1:12, NKRV)

세상과 본성은 시험을 받지 않는 자가 복이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야고보는 시험을 “참는 자”가 복이 있다고 합니다. 여기서 “참는다”는 말은 단순히 이를 악물고 그것이 끝나기를 기다리는 것을 말하지 않습니다. 보다 적극적으로 ‘시험이 다 지나갈 때까지 복음의 진리를 따라 견고하고 신실하게 남아있는 것’을 의미합니다. 시험과 시련을 겪는 것만이 아니라 그것을 어떻게 겪느냐를 말하고 있지 않습니까?

예수의 복음이 우리에게 가져다준 새로운 자리(그것이 높은 자리든 낮은 자리든 우리의 환경에 휘둘리지 않게하는 자유의 자리가 아닙니까!)를 자랑스워할 만큼 배우고 기뻐할수록 우리는 더욱 더 든든히 시험을 참을 것입니다. 이처럼 신자는 시험과 시련의 용광로를 통해 궁극적으로는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사랑을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도래할 어린양의 혼인잔치를 위한 그리스도의 신부로 더욱 순결하게 준비되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신랑되신 그리스도의 사랑을 더욱 사실적으로 맛보아 알아가는 것입니다. 점점 세상과 거기에 속한 것들로부터 젖을 떼고 예수 그리스도가 영광중에 다시오실 복된 날을 더욱 대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를 얼굴과 얼굴을 대면하여 보고 홀연히 그와 같이 될 것에 더욱 흥분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놀라운 복이 믿음의 시련이라고 하는 선물에 감추어져 있습니다.

그래서 야고보는 편지를 시작하자 마자 우리가 당하는 온갖 시험을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pure joy)고 하는 것입니다. 예수의 복음안에서 믿음으로 겪는 시험과 시련에는 하나님의 약속이 주어졌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생명의 면류관”입니다(계, Rev 3:11).

내가 속히 오리니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아무도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요한계시록 3:11, NKRV)

트리니티 뱁티스트(Trinity Baptist)

#시험 #인내 #trial #patience #James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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