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하 19 장
선한 사람과 선한 대의는 잠시 잃어버린 것처럼 보일지라도 언제고 반드시 그들의 신뢰와 평판을 다시 회복합니다. 선한 섬김은 사람들이 바른 마음과 제정신으로 돌아올 때 여전히 기억에 남아있게 됩니다. 그러니 항상 하나님의 편에 서야 합니다. 주의 말씀을 따라 순종해야 합니다. 세상에서 영원토록 변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 말씀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할 뿐 아니라, 모든 것의 재판장으로 남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의 반응에 널뛰기를 해서는 안됩니다. 그러다가는 낭패와 수치를 당하게 됩니다. 사람들에게 잘보이려고 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런 모든 동기는 자기 중심에서 나오는 것이고 자기섬김에서 비롯된 이기적인 죄입니다. 오롯이 섬기려고 하십시오. 알아주든 그렇지 않든 주의 뜻을 따라 섬겨야 합니다.
사무엘하 14 장
정의를 외면하는 용서라는 것은 허구에 불과합니다. 심지어 하나님께서도 먼저 죄를 통해 욕보이게 된 율법의 요구를 치르도록 하지 않고서는 “내쫓긴 자”를 회복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용서는 값없이 받습니다. 하지만 가볍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치르신 용서의 대가는 비쌉니다(롬 3;21-26).
죄를 회개하고 죄로부터 돌아서야 한다고 하나님은 우리에게 요구합니다. 우리의 용서를 위해 예수 그리스도가 죽어야 했습니다. 우리가 용서받는 다른 길은 없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입장에서는 값없이 받는 용서이지만, 하나님의 입장에서는 무한한 죄값을 다 치른 용서입니다. 값없이 받는 용서지만 값싼 용서는 아닌 것입니다. 왜요? 하나님은 죄를 반드시 그 죄의 악함에 걸맞게 심판을 하셔야 합니다. 지금도 변함없는 사실입니다.
사무엘하 9 장
다윗이 므비보셋에게 보인 환대는 그리스도안에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푸시는 친절과 선대하심을 잘 보여줍니다(엡 2:7; 딛 3:4). 사울 가족의 일원으로서 므비보셋은 이스라엘 나라에 대해 주장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다윗은 그를 자기 아들들 가운데 하나로 대했습니다. 요나단과의 언약을 지키기 위함이었습니다(삼상 20:12-16). 하나님은 자기 아들의 공로로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이런 구원은 하나님이 영원전에 아들과 맺으신 구속언약의 일부였습니다(엡 4:32; 히 13: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