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하 21 장
하나님의 심판아래 있을 때 우리는 모든 어려움의 근원까지 내려가 잘못된 모든 것을 바로잡을 때까지 힘쓰고 애써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하나님의 충만한 복이 우리에게 새롭게 임합니다.
자기 스스로는 죄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십자가에서 우리를 대신해 저주를 당하시고 우리의 죄책을 대신 담당하신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은 우리와 화해하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드리신 속죄제사가 완전히 받아들여졌다는 상징으로 예수는 십자가에서 내려져 장사되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가 당해야 할 심판과 죄책을 다 담당하심으로 우리의 하나님과의 원수된 일이 해결되었습니다.
사무엘하 20 장
이 세상에 사는 한 신자라 할지라도 어려움을 피해갈 수 없습니다. 아니, 오히려 그 반대의 경우가 많습니다. 문제가 하나끝나는 것은 새로운 문제의 시작을 알립니다. 하지만 그럴 때 이상한 일 당하는 것처럼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의 손에서 비롯된 일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 모든 일을 통해 승리를 이루시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하나님 편에서 믿음으로 주의 뜻을 따라 모든 상황을 맞이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우리가 하나님의 선하심과 능력과 지혜와 사랑을 의심하지 않고 그를 의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무엘하 19 장
선한 사람과 선한 대의는 잠시 잃어버린 것처럼 보일지라도 언제고 반드시 그들의 신뢰와 평판을 다시 회복합니다. 선한 섬김은 사람들이 바른 마음과 제정신으로 돌아올 때 여전히 기억에 남아있게 됩니다. 그러니 항상 하나님의 편에 서야 합니다. 주의 말씀을 따라 순종해야 합니다. 세상에서 영원토록 변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 말씀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할 뿐 아니라, 모든 것의 재판장으로 남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의 반응에 널뛰기를 해서는 안됩니다. 그러다가는 낭패와 수치를 당하게 됩니다. 사람들에게 잘보이려고 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런 모든 동기는 자기 중심에서 나오는 것이고 자기섬김에서 비롯된 이기적인 죄입니다. 오롯이 섬기려고 하십시오. 알아주든 그렇지 않든 주의 뜻을 따라 섬겨야 합니다.
사무엘하 18 장
자녀에 대한 아버지의 염려와 사랑을 이해하지 못하는 바가 아닙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자녀의 죄를 다루는 일에 대한 태도는 분명해야 합니다. 다윗은 압살롬에 대해서만큼은 정의가 없는 사랑을 주기를 원했습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만 사랑과 정의 모두가 완전히 충족됩니다. 우리의 하늘 아버지는 다윗과 다릅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의 죄를 짊어지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죄 덩어리가 된 “자기 아들도 아끼지 않으셨습니다”(롬 8:32).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로마서 8:32, NKRV).
사무엘하 14 장
정의를 외면하는 용서라는 것은 허구에 불과합니다. 심지어 하나님께서도 먼저 죄를 통해 욕보이게 된 율법의 요구를 치르도록 하지 않고서는 “내쫓긴 자”를 회복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용서는 값없이 받습니다. 하지만 가볍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치르신 용서의 대가는 비쌉니다(롬 3;21-26).
죄를 회개하고 죄로부터 돌아서야 한다고 하나님은 우리에게 요구합니다. 우리의 용서를 위해 예수 그리스도가 죽어야 했습니다. 우리가 용서받는 다른 길은 없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입장에서는 값없이 받는 용서이지만, 하나님의 입장에서는 무한한 죄값을 다 치른 용서입니다. 값없이 받는 용서지만 값싼 용서는 아닌 것입니다. 왜요? 하나님은 죄를 반드시 그 죄의 악함에 걸맞게 심판을 하셔야 합니다. 지금도 변함없는 사실입니다.
사무엘하 10 장
악한 자들은 자신들의 악함을 따라 모든 것을 판단합니다. 무엇보다 다른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습니다. 만왕의 왕의 신하들은 때로 부당한 취급을 받습니다(마 10;16ff). 하지만 흥분하거나 성을 내서는 안됩니다. 무엇보다 우리는 선하신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우리의 임금께서 모든 것을 그 뜻대로 주장하십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자녀들을 항상 돌보십니다. 우리는 우리의 일을 해야 합니다. 복음에 합당하게 행해야 합니다. 하늘에 계신 선하신 아버지의 자녀로, 그 아버지의 그 자녀로 행해야 합니다.
사무엘하 9 장
다윗이 므비보셋에게 보인 환대는 그리스도안에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푸시는 친절과 선대하심을 잘 보여줍니다(엡 2:7; 딛 3:4). 사울 가족의 일원으로서 므비보셋은 이스라엘 나라에 대해 주장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다윗은 그를 자기 아들들 가운데 하나로 대했습니다. 요나단과의 언약을 지키기 위함이었습니다(삼상 20:12-16). 하나님은 자기 아들의 공로로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이런 구원은 하나님이 영원전에 아들과 맺으신 구속언약의 일부였습니다(엡 4:32; 히 13:20-21).
사무엘하 8 장
다윗은 자신이 성전을 건축하지 못할 것을 알았습니다. 하지만 솔로몬이 그 일을 할 수 있도록 목숨을 걸고 이를 위한 준비를 했던 것입니다. 만약 당신이 꿈꾸는 일을 하나님이 다른 사람이 하도록 하신다면 그를 도와 그것을 이루도록 하십시오. 하나님 앞에서는 뿌리는 자나 거두는 자가 같은 영광과 기쁨을 누립니다. 주 안에 있는 자가 누리는 참 자유입니다!
“거두는 자가 이미 삯도 받고 영생에 이르는 열매를 모으나니 이는 뿌리는 자와 거두는 자가 함께 즐거워하게 하려 함이라” (요한복음 4:36, NKR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