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왕기상 15 장
하나님은 여로보암의 집이 심판 받을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그리고 바아사가 그 심판의 도구로 사용됩니다. 아이러니 한 것은 바아사 역시 여로보암의 길로 행합니다.
“바아사가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되 여로보암의 길로 행하며 그가 이스라엘에게 범하게 한 그 죄 중에 행하였더라” (열왕기상 15:34, NKRV)
하나님의 심판의 도구였기 때문에 바아사는 괜찮았을까요? 심판을 면했을까요?
이 땅에서 하나님의 심판의 방아는 아주 천천히 돕니다. 그래서 때로 선인들은 좌절하고 선을 행하는 일을 포기하려고 합니다. 그로 인해서 미련한 자들과 악인들은 죄에서 돌이키기는 커녕 오히려 죄의 길로 행할 담력을 얻습니다. 하지만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의 심판의 방아가 아주 천천히 돈다고 해서 심판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말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그 심판의 무게입니다. 천천히 도는 만큼 그 방아아래로 떨어진 죄인의 모든 것을 아주 가루로 빻아버립니다.
열왕기상 12 장
불경건한 자들의 조언과 자문을 취하는 것은 항상 큰 어려움을 초래합니다. 거칠고 사나운 대답은 항상 분리와 분열을 초래합니다. 만약 우리가 하나님을 우리가 취할 모사의 원천으로 여긴다면 우리는 모든 어리석음과 그에 따른 비참한 결과를 피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땅에서 그 원천은 다름 아닌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이러한 지혜는 위로부터 내려온 것이 아니요 땅 위의 것이요 정욕의 것이요 귀신의 것이니” (야고보서, Ja 3:15, NKRV).
그의 아비와 달리 르호보암은 하나님의 지혜를 구하지 않았습니다(왕상, 1K 3). 대신에 그는 사람들의 인도를 바랐습니다. 심지어 바른 조언도 저버렸습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조언이라는 것을 구하는 것처럼, 르호보암은 자신이 이미 하기로 마음먹은 것을 하라고 말해주는 사람이 자기에게 말해주기를 원했습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내가 이미 답을 정해 놓고 그것을 인정해주는 말을 듣고자 하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뜻을 구한다고 하면서 자신이 정한 것을 하나님의 뜻으로 구하지는 않습니까? 우리에게는 사랑으로 진실을 말해줄 벗이 필요할 뿐 아니라, 그런 진실을 진실로 들을 수 있는 귀가 필요합니다. 겸손한 마음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열왕기상 11 장
죄의 길은 내리막길입니다. 한번 그길에 발을 들여놓은 사람은 벗어나기가 어렵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한 남자를 위해 한 여자를 예비하셨습니다. 하지만 하나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여기는 남자는 둘이라고 달라지지 않습니다. 육체에 속한 것들을 사랑하기 시작하면, 이내 우리는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잃어버리고 문제투성이의 길로 빠져듭니다.
다윗의 집은 모든 죄와 문제들에도 불구하고 보존되어야 했습니다. 메시야가 오실 계보였기 때문입니다. 다윗의 가계를 보존한 것은 다윗이나 그 후손의 어떠함이 아닙니다. 다윗에게 주신 하나님의 약속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에게 보여진 모든 하나님의 호의는 오직 그리스도때문이고 그리스도와 하나님이 영원전에 맺으신 구속언약때문입니다.
“오직 내 종 다윗을 위하고 이스라엘 모든 지파 중에서 택한 성읍 예루살렘을 위하여 한 지파를 솔로몬에게 주리니” (열왕기상 11:32, NKRV).
솔로몬은 다른 모든 사람들을 위해서는 놀라운 지혜를 발휘했습니다. 하지만 정작 자기 자신에게는 그 지혜를 적용하지 않았습니다.
열왕기상 3 장
유대인들이 이집트 사람들과 결혼하는 것이 금해지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왕으로서 솔로몬이 바로의 딸과 정략적인 결혼을 함으로 솔로몬 자신과 백성들이 하나님의 율법을 거스르는 길을 열어 놓았습니다. 이로 인해 온 나라는 물론 솔로몬 자신에게도 비극적인 결과가 따릅니다(왕상 11:1-8; 신 7:1-4).
만약 솔로몬에게 물으신 것처럼 하나님이 “네게 무엇을 주기를 원하느냐?”고 당신에게 물으신다면 무엇을 구하겠습니까? 진심에서 나오는 당신의 대답이 곧 당신 자신과 하나님이 당신을 부르신 일에 대한 당신의 믿음을 보여줍니다.
열왕기상 1 장
사람이 스스로를 높일 때 하나님은 때로 그들을 내버려두셔서 스스로 초래한 일들을 통해 벌을 받도록 하십니다. 아침에 왕관을 차지했던 아도니야는 밤이 되기 전에 자신의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제단 뿔을 부여잡는 처지로 전락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말에 쉽게 휘둘리면서도 과거의 잘못으로부터 배우지 않으려고 합니다. 압살롬처럼, 아도니야는 잘생겼고, 인기가 많았고, 교만했습니다. “내가 왕이 되겠다”고 한 그의 또 다른 자랑은 심판으로 귀결되었습니다. 어리석게도 요압과 아미아달은 아도니야의 편에 서서 하나님의 사람 솔로몬을 대적했고 그 대가를 치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더 귀를 기울여야 했습니다(출 2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