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왕기상 15 장

 
  • 주요 내용: 아비얌의 즉위와 아사 치하의 유다. 바아사와의 전쟁. 아람과의 동맹. 나답과 바아사.‌

  • 주요 인물: 하나님, 아비얌, 아사, 나답, 바아사, 벤하닷.‌

  • 주요 단어: 전쟁(왕상, 1K 15:6, 16, 20, 29, 32).‌

  • 주요 구절: 왕상, 1K 15:4, 11.‌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다윗을 위하여 예루살렘에서 그에게 등불을 주시되 그의 아들을 세워 뒤를 잇게 하사 예루살렘을 견고하게 하셨으니 (열왕기상 15:4, NKRV).‌‌

하나님의 위협은 무서운 모양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어떤 말도 허투로 땅에 떨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패배와 폐허의 모양으로 하나님이 위협한 재앙들은 그 모습을 드러냅니다.

하나님 앞에 온전한 마음이란 죄가 없는 마음을 가리키지 않습니다. 완전한 순종을 가리키지도 않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자 하는 진지한 열망과 뜻이 주장하는 마음입니다.

다만 산당은 없애지 아니하니라 그러나 아사의 마음이 일평생 여호와 앞에 온전하였으며 (열왕기상, 1K 15:14, NKRV).

하나님은 다윗으로 인해 유다를 복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우리를 복주시는 것과 같습니다(엡, Eph 1:3).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 (에베소서 1:3, NKRV).

또한 우리가 누리는 복은 앞서 간 신앙 선진들의 신실함을 통해 우리에게 오는 것입니다. 그러니 어떤 공로도 결코 자기 자신이나 자기 세대에 돌리지 말아야 합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표현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5절의 “헷 사람 우리아의 일 외에는”이라는 표현입니다. 가슴 한 구석을 찌르는 비수와 같이 잠시 숨을 멈추게 하는 다윗의 죄입니다. 한 순간의 정욕으로 인해 치르게 된 대가가 얼마나 큰지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 각 사람에게는 사람들에게는 드러나지 않았을지라도 하나님앞에서는 발기 드러나고 또한 각자의 기억에 남아 있는 숨은 죄악들이 있습니다. 이는 우리를 더욱 겸손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죄를 더욱 죄로 아는 일을 멈추지 말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죄에는 빠졌을 지언정 그리스도안에서 영원한 멸망으로 떨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그러나 또한 우리가 더욱 잊지 말아야 할 사실이 있습니다. 이런 엄청난 죄를 지은 사람도 사죄의 은총을 누리고 다른 사람에게 복이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복의 근원되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는 구속받지 못할 죄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더이상 동일한 죄를 품고 있어서는 안됩니다. 여전히 죄 지을 생각을 가지고 있으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사죄를 들먹여서는 안됩니다. 여전히 죄지을 생각을 버리지 않으면서 ‘마음은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다’느니,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넘친다’느니, ‘하나님은 나의 약함을 다 아신다’는 식의 양심에 화인맞은 생각으로 담력을 얻어서는 안됩니다.

다윗은 하나님께 용서를 받았지만 한 나라의 임금으로서, 하나님과의 언약 백성으로서 범한 그의 죄 때문에 온 나라를 밝히던 진리의 등불이 흔들리게 되었습니다. 유다의 죄는 언젠가 심판을 받을 것이었습니다.

아사 왕의 시작은 좋았습니다. 아니 그 이상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결말은 너무도 실망스럽습니다. 성전에서 종교적 창녀들을 다 몰아내고 유다 땅에서 우상을 제해버릴 정도로 아사왕은 용기가 있었습니다. 심지어 그는 자신의 할머니를 폐위시킬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승리를 위해 여호와 하나님을 의지하기보다 그는 성전을 도둑질하여 이교도의 왕에게 뇌물로 바쳤습니다. 그렇게해서라도 자신의 승리를 담보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나는 어떻습니까? 끝까지 하나님을 의지합니까? 하나님을 의지하기보다 내 손에 승리와 성공과 안녕과 평안을 쥐고있으려고 하지 않습니까? 마치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내가 임금은 아니지만, 적어도 내 삶의 영역을 주의 뜻대로 다스릴 특권과 책임은 있습니다. 사실 임금과 다른 것이 무엇입니까? 당신은 어떤 임금입니까? 시작은 좋은 것 같았으나 주를 의지하지 않음으로, 하나님의 섭리의 역사를 믿지 못하고 스스로 소중히 여기는 무엇을 잃을 것에 대한 두려움에 본성과 육체와 세상의 풍조와 유행을 따라가지 않습니까?

보십시오. 아사왕이 한 일들에 대해 세속역사가는 전혀 비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외교에 능했고, 국방과 외교에 힘쓴 인물이었다고 평가할 것입니다. 솔로몬은 또 어떻습니까? 다윗의 잘못이 세속적으로 보면 무에 그리 대단합니까? 하지만 그런 모든 평가 역시 만유의 재판장이신 하나님 앞에서 심판을 받습니다. 그 재판장이 지금 우리에게 당신의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원치 않는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당신의 마음이 일평생 여호와 앞에서 온전하지 않으면 소망이 없습니다. 곧 하나님의 말씀의 길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법입니다.

하나님은 여로보암의 집이 심판 받을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그리고 바아사가 그 심판의 도구로 사용됩니다. 아이러니 한 것은 바아사 역시 여로보암의 길로 행합니다.

바아사가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되 여로보암의 길로 행하며 그가 이스라엘에게 범하게 한 그 죄 중에 행하였더라 (열왕기상, 1k 15:34, NKRV)

하나님의 심판의 도구였기 때문에 바아사는 괜찮았을까요? 심판을 면했을까요?

이 땅에서 하나님의 심판의 방아는 아주 천천히 돕니다. 그래서 때로 선인들은 좌절하고 선을 행하는 일을 포기하려고 합니다. 그로 인해서 미련한 자들과 악인들은 죄에서 돌이키기는 커녕 오히려 죄의 길로 행할 담력을 얻습니다. 하지만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의 심판의 방아가 아주 천천히 돈다고 해서 심판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말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그 심판의 무게입니다. 천천히 도는 만큼 그 방아아래로 떨어진 죄인의 모든 것을 아주 가루로 빻아버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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