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89
런던 뱁티스트
신앙고백
16장. 선행 (Of Good Works)
주의 피로 구속함을 받은 신자는 이제 더 이상 자기 것이 아닙니다. 자기 피로 값주고 산 주님의 것입니다. ‘내가 신자요’라고 말하는 것은 ‘이제 나는 사나 죽으나 주의 것이요’라는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스스로 신자라 일컫는 자의 일상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사는 것이어야 합니다.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주의 영광을 위하여 하는” 일상이어야 합니다(롬 14:8).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계시된 뜻, 다시 말해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도덕법에 순종하는 것을 가리키는 ‘선행’(good works)은 그리스도의 피로 율법의 정죄로부터 자유롭게 된 신자의 특권과 의무일 뿐 결코 스스로를 더 낫게 생각하는 자랑거리가 될 수 없습니다. 누가복음 17:10의 예수님 말씀처럼 “명령 받은 것을 다 행한 후에…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가 하여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고 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13장. 성화에 관하여(Of Sanctification) | 1689 런던 뱁티스트 신앙고백
예수 그리스도 밖에 있는 자연인은 마음과 삶의 거룩을 추구할 수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믿어 그의 공로로 의롭게 되고, 그와 연합하게 되어 양자의 영을 받은 자만이 거룩한 삶을 살 수 있고, 예수 그리스도를 닮은 거룩함에 자라갈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성화라 부르는 혹은 신자가 거룩하게 된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거룩한 삶이란 다름 아닌 개인의 삶 전체가 성경에 계시된 하나님의 계명과 법에 따라 변화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고백이 성경을 ‘신자의 신앙과 삶의 유일한 원리’라고 하는 것도 신자의 성화와 맞닿아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주를 믿는 믿음 안에서 순종하지 않는 성화는 없습니다.
‘성도’란 ‘거룩한 무리,’ ‘구별된 백성’이라는 뜻입니다. 누구를 위해 구별되었습니까? ‘거룩하신 하나님’께 구별되었습니다. 무엇으로 구별되었습니까? ‘하나님의 법’으로 구별됩니다. 하나님의 법을 따라 살도록 구별되고 구속된 것입니다.
성화되지 않는 신자가 있을 수 없는 것처럼,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 성화 역시 있을 수 없습니다. 이것은 거룩하신 하나님이 정하신 법입니다. 당신이 신자라면 당신의 삶은 거룩해 지고 있습니까? 당신의 마음과 삶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조율되고 있습니까? 아니면 본성과 문화와 습관을 따라 ‘떠내려가고’ 있습니까?
히브리서 2:1
1 그러므로 우리는 들은 것에 더욱 유념함으로 우리가 흘러 떠내려가지 않도록 함이 마땅하니라
XII. 양자됨에 관하여(Of Adoption) | 1689 런던 뱁티스트 신앙고백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는 그들이 하나님의 자녀라는 증거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양자의 영이 그들 마음에 인친 그들의 아버지의 형상이다.
IX. 자유의지에 관하여 | Of Free Will
인간의 '자유의지'에 관하여 성경이 가르치는 바입니다. 하나님의 선하신 창조(the state of innocence)-죄의 지배아래로 타락한 상태(the state of sin)-하나님의 은혜로 구속함을 받은 상태(the state of grace)-영화의 상태(the state of glory)에 따라 하나님이 부여하신 인간의 자유의지의 상태와 기능이 다릅니다. 칼빈은 성경을 '영혼의 거울'이라고 했습니다. 성경을 읽고 들음으로 성경의 거울에 반사된 자신의 모습을 정확하게 보고 이해할 때 주 예수의 구원의 복음을 통한 생명과 자유와 영생의 길이 열립니다. 그리고 그 길은 주의 의로운 말씀을 따라 난 거룩한 길이요, 시온의 대로입니다.
만물을 선하게 창조하신 하나님은 가장 큰 것으로부터 가장 작은 것에 이르는(마 10:29-31) 모든 피조물과 만물을(히 1:3; 욥 38:11. 사 46:10, 11; 시135:6) 그의 무오한 예지와 자유롭고 변함없는 자신의 뜻의 경륜을 따라 각각 창조된 목적대로……다스리신다.
5. 하나님의 섭리
하나님은 사람을 바르고 완전하게 창조하셨다. 준행하면 생명에 이르도록 하는 의로운 법을 사람에게 주시고, 그것을 거스릴 경우 사망에 이를 것을 경고하셨다(창 2:16,17).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은 이런 영예로운 상태에 그리 오래 머물지 못했다.